사설
30년 만에 다시 법정에서 선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재심이 그제 모든 심리를 마쳤다. 결심공판에서 피고 쪽은 무죄를 주장했고, 원고 쪽인 검찰은 구형을 하지 않고 재판부에 공을 넘겼다. 이로써 유신독재가 우리 현대사에 ‘사법살인’이란 치욕적 상처를 남긴 인혁당 사건은 법원의 최종 선고만을 남기게 됐다.
이번 재판에서는 인혁당 재건위뿐 아니라 그 하부조직으로 지목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재심이 이뤄졌다. 인혁당 재건위가 민청학련의 배후에서 학생시위를 조종하고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는 게 주된 공소사실이기 때문이다. 김지하·이철·유인태 등 민청학련 관련자 십수명이 법정 증언을 하고 재판도 예상보다 길어진 이유다.
재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직적인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수많은 법정 증언, 국가기관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당사자인 국가정보원의 자체조사 기록 등을 받아들인 당연한 결과다. 재판부의 최종 판단을 지켜봐야겠지만, 당시 관련자들의 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한 내란 예비음모 행위 등 핵심 범죄 사실 또한 법적 근거를 상실한 셈이다.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구형 없는 논고를 했다. 수사기관의 가혹행위가 있었고 적법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법정 진술을 언급하며 재판부에 판단을 미뤘다. 어쩔 수 없이 공소를 유지하지만 유죄를 입증할 자신은 없다는 어정쩡한 태도는, 과거사 규명에 일관되게 소극적인 검찰 분위기를 다시 한번 드러낸 것이다. 재심은 공소를 취하할 수 없고, 당시 수사·기소 주체가 검찰이 아니라는 해명은 무책임하고 궁색하다. 검찰 본연의 소임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이번 재판에선 검찰이 고문을 방조했다는 법정 증언도 잇따랐다. 앞으로 검찰의 치부를 드러내야 할 수많은 의혹 사건을 어떻게 다룰지 궁금하다.
이번 재심은 관련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뿐 아니라 폭압적인 유신체제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의 의미도 지닌다. 피해자들이 유신체제와 긴급조치야말로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을 파괴한 내란 행위라는 변론 취지를 강조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지금도 유신독재의 잔재가 유령처럼 떠돌고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현실이다. 재판부의 판결이 주목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