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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뉴욕교육청 “친팔레스타인” 강사자격 박탈

등록 2005-03-14 18:26



미국 학문자유 ‘시련의 봄’

컬럼비아대 칼리디 교수에
교수상대 강의 불허 논란

교육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교수가 친팔레스타인 입장에 서 있다는 이유로 뉴욕시가 그의 강사 자격을 박탈한 일을 둘러싼 논란이 미국에서 한창이다.

주인공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라시드 칼리디라는 중동문제 전문가다. 컬럼비아대 중동문제 연구소장인 칼리디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의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왔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정치적 견해가 문제가 된 것은 미국의 대표적 보수 황색지인 〈뉴욕 선〉이 지난달 15일 그가 뉴욕시 공립학교 교사들에게 중동문제를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지도하는 강사로 나선다는 기사를 1면에 내보내면서부터다. 이 신문은 그가 수업시간에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인종주의 국가’로 평하고,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공격을 지지하는 등 편견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공립 교사들에게 중동문제를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칼리디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동의 자유를 박탈하는 등의 정책을 두고 ‘인종주의적’이라고 말했다. 또 나는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 대한 맹렬한 비판자였고 자살폭탄 공격은 전쟁범죄라고 주장해 왔다. 단지 국제법상 ‘지배에 항거하는 것은 정당하다’고만 말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뉴욕 교육청이 칼리디의 시 교육강사 자격을 박탈하면서 논쟁은 〈뉴욕 선〉의 칼리디 교수 발언 왜곡 여부나 그의 정치적 견해에 대한 평가를 넘어 학문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과 컬럼비아대의 친팔레스타인 성향에 대한 공격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학문의 자유냐, 중립성이냐?=〈뉴욕 선〉의 보도가 나오자마자 뉴욕시 교육청은 “칼리디의 과거 발언들을 볼 때 그는 중동문제 교육 프로그램 강사에 포함돼선 안 된다”며 그를 강사진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컬럼비아대와 뉴욕시가 손을 잡고 10년째 해오는 강좌로, 컬럼비아대 교수들이 15주 동안 공립학교 교사들에게 중동문제를 바라보는 여러가지 관점에 대해 가르친다.

대학총장 “표현자유 보장 어긋나”
미국내 이-팔 우호세력간 ‘대리전’ 양상

뉴욕시장 후보인 앤서니 웨이너 민주당 의원과 미국유대인위원회도 교육청의 조처를 지지했다. 이들은 “그런 강의는 매우 중립적인 학자가 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리 볼링거 컬럼비아대 총장은 즉각 교육청장에게 서한을 보내 “이 결정은 칼리디의 정치적 입장에만 근거해 이뤄졌기 때문에 수정헌법 1조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수정헌법 1조는 표현·종교·언론·출판·집회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그는 또 칼리디를 제외시킨다면 컬럼비아대는 이 프로그램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수정헌법 전문가인 마크 스턴도 “어떤 사람이 특정 견해를 가졌다고 해서 강의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교육인권재단(FIRE) 위원이자 수정헌법 전문가인 넷 핸토프는 “‘잘못된 발언을 바로잡는 길은 발언을 막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발언을 많이 하게 하는 것’이라는 게 수정헌법의 취지”라며 “강의가 한쪽 입장으로 전달되는 게 우려스럽다면 여러 강사가 공동수업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990002%%▷ (사진설명) 친팔레스타인적이라는 이유로 뉴욕시 공립학교 교사 교육 프로그램 강사자격을 박탈당한 라시드 칼리디(왼쪽) 컬럼비아대 중동문제 연구소장이 지난해 5월 시카고대학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중동문제에 대해 강의한 뒤 사인한 자신의 책을 나눠주고 있다. 시카고대학 학보사 홈페이지

팔레스타인 편이냐, 이스라엘 편이냐?=한꺼풀만 벗겨보면, 이 논란은 미국내 (친)이스라엘과 (친)팔레스타인 계열 간의 다툼이기도 하다. 이 논쟁에서 ‘학문의 자유’를 지지하는 쪽은 친팔레스타인 성향이 강하며, ‘강의의 중립성’을 주장하는 쪽은 친이스라엘적 성향이 강하다. 칼리디를 자른 조엘 클레인 뉴욕시 교육청장은 유대인이다. 반면 볼링거 컬럼비아대 총장은 칼리디의 정치적 견해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미국 언론들도 평소 정치적 견해를 따라 이 사안을 다른 관점에서 보도하고 있다. 이 사건이 불거지자, 컬럼비아대의 유대인 교수들과 학생들이 학내 친팔레스타인 교수의 편향적 수업에 대해 문제삼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대학 당국은 이 문제를 조사하는 독립위원회를 발족해 토론회를 여는 등 조사에 들어갔다.

컬럼비아대 성향 논란=또 이 논란의 이면에는 진보적 성향이 강하고 특히 중동문제에서 친팔레스타인 성향을 보이는 컬럼비아대를 이번에 손보겠다는 보수진영의 입김도 작용하고 있다. 〈뉴욕 선〉은 연이어 컬럼비아대 중동문제 연구소에 아랍권의 돈이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폭로했다. 신문은 지난 10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기업 아람코가 어디에 써야 한다고 적시하지 않고도 매년 1만5천달러를 컬럼비아대에 지원하는 등 여러 아랍계 나라 및 기업이 이 대학에 돈을 지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나가자 당장 보수진영에선 ‘당장 그 돈을 돌려주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또 보수진영에게 ‘눈엣가시’였던 에드워드 사이드 컬럼비아대 교수가 숨지던 2003년에 칼리디를 중동문제 연구소장에 임명한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등 볼링거 총장의 교수 채용에 편향성이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진보적 시각의 저명한 컬럼비아대 교수로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외에 제프리 삭스, 하워드 진 등이 있으며, 이런 학풍 때문인지 컬럼비아대 학생들은 이라크전쟁 반대운동을 거세게 벌이기도 했다.

한편, 이는 ‘여성차별’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던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총장이 아랍권의 기금 지원을 주저없이 거절한 것과 대비된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서머스 총장은 반이스라엘운동에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고 있기도 하다.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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