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유력한 대선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국민들의 선호도 조사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함께 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정치적인 비중도 그만큼 크다. 그의 언행이나 사고방식에 우리가 큰 관심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법원의 인혁당 재건위 재심사건 무죄 판결과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한 진실화해위원회의 판결 분석을 놓고 박 전 대표가 보이는 반응은 실망 그 자체다. 그는 인혁당 사건을 두고 “지난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이고, 이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인데 그러면 법 중 하나가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긴급조치 위반 판결 분석에 대해서는 “하필 왜 지금 발표하는 것이냐”며, “나에 대한 정치공세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민주국가의 운영을 책임지는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 맞나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다. 독재정권과 그 시녀 구실을 했던 사법부가 저지른 사법살인으로 명백하게 드러난 사건을 두고 ‘둘 중 어느 한 법이 잘못됐다’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은 피해자의 아픔을 외면하는 차원을 넘어 역사 발전을 부정하는 것이다. 독재정권의 유신시대 법 질서와 정당한 내용과 절차를 담은 지금의 법 중 어느 것이 잘못인지를 정말 모르는가. 그렇다면 민주화된 나라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정치공세라는 주장도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인권을 보호하기는커녕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은 과거 판결을 정리·발표한 것이 어떻게 박 전 대표를 겨냥한 정치공세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유신 시절 대통령을 보필할 수밖에 없었던 박 전 대표를 고려해서 진실화해위원회의 과거사 청산 작업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말인가. 자신의 이해관계만 우선시하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과거를 드러내 밝히는 것은 특정인이나 세력을 단죄하거나 일방적으로 매도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한 잘못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는 사회적인 성찰이자 다짐이다.
박 전 대표는 과거의 진실을 정치 공세로 호도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잘못된 부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었으면 피해자들에게 대신 사과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래야 사회가 발전하고 화해할 수 있다. 이는 민주국민에 대한 정치 지도자의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