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1962년 국가가 헌납 형식을 빌려 빼앗은 고 김지태씨의 재산을 유족에게 돌려주거나, 돌려줄 수 없다면 손해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이런 권고를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필요한 절차를 검토하라고 각 부처에 지시한 것은 당연하다. 강제 헌납 사실은 이미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도 확인한 바 있다.
강제로 헌납한 재산 가운데 지금도 국가 소유로 돼 있는 것을 돌려주고, 국가가 소유하다 매각한 부분에 대해 손해를 배상하는 일은 절차상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의 정수장학회가 소유하고 있는 문화방송 주식과 부산일보 주식 반환 문제는 간단치 않다. 국가가 먼저 재산 가치를 돈으로 평가해 돌려준 뒤 정수장학회에 구상권을 행사하려면 소송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정부가 언론사 지분을 갖게 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유족들이 정수장학회를 계속 공익재단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힌 만큼 해법은 있다. 박근혜 전 이사장과 측근 인사들이 장학회 운영에서 손을 떼기만 하면 된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씨한테서 이름을 따왔고, 실제로 박 전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인사가 중심이 돼 지금까지 운영해 왔다. 박 전 이사장은 95년부터 10년 동안 이사장을 맡으며, 매달 거액의 활동비와 승용차를 제공받기도 했다. 장학회를 사유화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다. 박 전 이사장이 진실화해위원회 권고에 대해 “이미 사회에 환원된 것”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그런 점에서 유감스런 일이다.
늦기 전에 박 전 이사장이 결단을 내리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지난날 국가가 저지른 명백한 잘못을 고치지 않겠다는 것은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다운 발상이 아니다. ‘정치적 장물’이라고까지 불리는 장학회 재산을 계속 사유재산처럼 갖고 있겠다는 뜻으로 비칠 뿐이다. 김지태씨 유족들은 정수장학회뿐 아니라, 그 밖의 재산도 돌려받게 되면 공익재단에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장학회 재산이 주로 언론사 주식이어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세간의 관심이 더 크다. 지난날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게 유족들이 구체적인 재단 운용 계획을 내놓고 공론을 거친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동안 장학회가 사회에 이바지한 바도 있다. 더 잘 되도록 돕는 것이 박 전 이사장에게도 명예로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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