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부터) 이영상(1957년 닭띠·49살), 서재만(1969년 닭띠·37살), 문성경(1981년 닭띠·25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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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은 을유(乙酉)년 닭의 해. 닭은 액을 쫓고 복을 부르는 짐승이며, 근면과 다산의 상징이다.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은 희망의 메시지다. 닭의 해에는 우리나라에 중요한 정치적 격변과 사건이 많이 일어나기도 했다. 1945년은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은 해다. 69년엔 3선개헌이 통과돼 박정희 쿠데타정권의 장기집권 행군이 시작됐고 81년에는 전두환 군사정권의 제5공화국이 등장했다. 93년은 지긋지긋하던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문민시대’가 열린 해다. 그렇다면 2005년은? 지난해 극심한 정치·사회적 갈등과 경기침체의 고통을 견뎌낸 서민들은 이번 닭의 해에 어떤 기대를 품고 있을까? 광고기획사인 와이낫커뮤니케이츠 이영상(49) 대표, 외국계 은행인 유비에스 은행 서울지점 서재만(37) 차장, 영화제 기획을 하는 문성경(25)씨 등 20~40대의 닭띠 3명이 지난 3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닭띠해에 거는 우리사회의 희망을 놓고 얘기를 나눴다. 이영상 “닭의 해지만 싸움닭 되지말고”
서재만 “내가 하기 싫은건 남도 싫단 생각을”
문성경 “너는 이래야한다 강요 안했으면” 우선 닭띠해를 맞는 소감을 물었다. 40대는 ‘닭이 어둠을 밝혀준다’는 상징을 들어 새해에 대한 기대감을 폈고, 30대는 ‘무소감’이라고 응답했다. 20대는 자신이 아침이 아닌 저녁에 태어난 닭띠라서 노래를 잘 못하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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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만 =경제적인 것만 딱 떼어놓고 본다면, 저같은 월급쟁이들은 큰 어려움은 없는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월급만 제 때 나오면 큰 어려움은 없으니까요. 금융권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지난해 우리 회사는 월급도 조금 올랐어요. 이전 3년간 동결됐던 탓도 있구요. 오히려 자영업하는 분들이 불황 탓에 많이 힘들어하신 것 같습니다. 정치적으로 보면 지난해는 정말 다사다난했다는 느낌입니다. 저희 사무실이 종각 근처에 있는데, 종로나 광화문 주변에서 여러가지 집회로 최근 몇 년 중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해가 작년이었습니다. 이른바 운동권뿐 아니라 우익 집회도 상당히 자주, 그리고 대규모로 열렸는데, 이게 좋다싫다를 떠나서, 현상 자체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생각이에요. 문성경=지난해 우리 사회의 변화와 그 속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디지털과 관련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던 10대 후반시절부터 무척 불안감을 느끼게 되더라구요. 이 빠른 변화속도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2004년에 불었던 한류열풍을 보면서 ‘이젠 글로벌 시대구나’라는 자각도 생겼어요. 결국 속도감·변화감이 많이 느껴진 한 해였고, 그런 변화에 맞춰가는 적응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일년이었습니다. 이=지난 해가 불황이었다 아니다 이야기가 많이들 있었습니다. 무역흑자 같은 수치로 보면 불황이 아닌 것으로 나오는데, 서민들은 대개 불황이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서민들이 보기엔, 중소기업들이 엄청나게 몰락하고 음식점들도 문을 닫고 젊은이들은 직장이 없다고 난리였으니까요. 우리 아들 대학 졸업하면 취직시켜야 하는데 집에서 놀면서 ‘캥거루족’이 되어있으니 부모들이 걱정이 안되겠어요? 또 요새는 은행에서 돈을 조금만 찾아도 수수료를 천원씩 내야 하고, 거기다 올해부터 담뱃값도 올랐죠. 아무리 둘러봐도 좋아진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대기업이나 부자들 빼놓고 나머지는 다 허덕이는 생활을 하고 있는 거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결구도마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서=우리 경제가 왜 이렇게까지 왔는지에 대해선 참 어려운 얘기입니다만, 직장 다니는 친구들 만나서 얘기 나눠보면 우리 기업이 너무 안이하게 기업경영을 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예컨대, 제가 다니는 외국계 은행에서는 직급이 올라가면 일도 많아지고 책임도 커지는데 국내 기업들은 반대라는 거예요. 높이 올라갈수록 일이 없어진다는 거죠. 또 일하는 만큼에 비례해서 인센티브도 별로 없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문=저는 지금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요즘 직장 구하려고 시도한 적이 없어서 얼마나 취업난이 심각한지 몰랐어요. 근데 얼마전 영화제 기획하면서 프로그래머를 모집했더니 난데없이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엄청나게 지원서를 냈더군요.(웃음) 그리고 생활이 어떠냐 하면, 전에는 (비정규직 직원에게) 보너스를 주거나 점심·저녁 식대같은 걸 챙기곤 했는데, 그런 것마저도 조금씩 줄어들고…아무래도 타격이 있습니다. 이=그동안 일반 노동자들의 임금은 몇 년 동안 거의 안 올랐어요. 또 대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어마어마하게 뽑아 쓰고 있는데, 다 월급 조금 주기 위해서 그러는 거죠. 그러면 기업 이익은 도대체 누가 다 가져가느냐는 겁니다. 비정규직원이 수입은 적고 호소할 데는 없고…참 어려움을 겪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전반적으로 산업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넘어가는 단계인데, 서비스업에서도 뭔가 새로운 것을 못찾고 있습니다. 제조업은 죄다 중국으로 가버리니 일자리는 점점 없어지죠. 수입이 줄어들어 돈을 못쓰니 소비가 안 일어나죠. 대기업들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엠엔에이에 대응하다 보니 현금보유만 늘이고 투자는 못하고 있구요. 복합적으로 얽힌 것 같습니다. 서/ 좋다싫다 떠나 지난해는 정말 다사다난
미/ 대기업·주자들 빼곤 다 허덕이는 생활
문/ 아침에 티브이를 켜면 밥맛이 뚝 문=저도 경제가 왜 이렇게 어렵게 는지 정말 알고 싶어요. 이=2004년은 모두에게 대결구도가 펼쳐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좌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새해에 바라는 것 중 한가지는, 대결구도로 누가 이익을 보는지 모르겠지만 웬만하면 이제 그만 정리하고 같이 손잡고 뛰어가는 한해가 되면 좋겠어요. 서=대결구도는 어느 사회에서나 그 사회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정치권에서도 여당과 야당 간에 대결구도를 통해 정치를 이끌어가는 겁니다. 단순히 대결구도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얼마나 대화와 타협을 잘 이끌어낼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고, 또한 이를 위한 법적·사회적 장치를 갖고 어떻게 조처를 취해 갈 것인가 하는 게 중요합니다.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을 위해 뭔가 하라’는 바람만으로는 효과가 없고, 이를테면 ‘뭔가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죠. 문=저한테는 매일 점심 식사값 4천~5천원이 큰 부담이라서 도시락을 싸가는데, 도시락 싸려면 아침에 15분 일찍 일어나야 되거든요. 요새는 시간이 다 돈으로 환산돼요. 삶이 팍팍해지다 보니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부지런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하고, 방송같은 데서 ‘무소유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 한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예요. 꽁꽁 얼었을 때는 책상에 살짝 부딪쳐도 아픈 거잖아요. 그래서 저도, 뭔가 이런 고민을 해결해 줄 정책같은 것을 정부나 정치권에서 확실히 갖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정말 10원, 20원이 아까와 죽겠는데, 정치인들이 맨날 싸움만 하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들 월급을 차라리 나같은 사람한테 주지’하는 생각도 들어요. 정책 마련도 못하는 국회의원들을 아예 처벌을 하든지…. 아침밥 먹으면서 티브이를 켜면 아주 밥맛이 뚝 떨어져요. 자기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하는데, 그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게 더 문제인 것 같아요. 이=요즘에는 지금까지 가졌던 언론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깨지고 있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현 정부가 들어선 뒤 언론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했을 때 저도 의심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최근에 신문 여러 개를 놓고 비교를 했더니, 어떤 신문은 대통령이 무조건 잘못했다는 식으로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겁니다.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고, 나중엔 ‘도대체 또 어떻게 트집잡나’를 보려고 그 신문을 보게 되더라구요. 어떤 방송은 너무 친정권 성향을 보이기도 하구요. 똑같은 사실을 놓고 어떻게 이렇게 다른 잣대를 들이대나 하는 생각이 들어 언론에 대해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문=사실, 정치 문제에 관해서는 사실 제 친구들과 이야기해 봤자 답이 안 나온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죠. 우리 세대는 우리가 직접 운동을 해서 개혁이라든가 세상을 바꿔 본 세대가 아니잖아요. 학교에서 공부하다 안되면 자퇴해버리거나 개인적인 방법으로 자기 정체성을 실현하려고 시도하기는 하지만, 집단적으로 나서 본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모여서 어떻게 한다고 바뀔 것이라는 식의 기대는 그다지 없는 편입니다. 여럿이 토론해서 바꾸기보다는 그냥 혼자 일인시위를 하거나, 인터넷에 리플(댓글)을 엄청나게 단다든지 하는 식이에요. 세 토론자는 지난해 한국사회에 대한 추억으로 한결같이 ‘대립’과 ‘갈등’을 떠올렸다. 정치권의 싸움, 커져가는 빈부격차, 이념과 세대간의 대립 등 2004년에 관한 ‘안 좋은 추억’은 2005년에 거는 밝은 희망보다 더 크고 많았다. 서재만 “386세대 참 가엾은 부류 중 하나”
문성경 “정치인들 월급 차라리 나한테 주지”
이영상 “우리나라 진짜 스트레스 많은 나라” 서=요즘 젊은층을 보면 정치적으로 자꾸 보수적인 성향으로 가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정치로부터 자기를 소외시키기도 하구요. 저는 이른바 ‘386세대’의 마지막 학번인데, 386세대가 참 가엾은 부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1980~90년대 학교에서 열심히 운동을 했지만 졸업하고 나서 이들을 받아들일 사회적 구조가 별로 없었다는 거죠. 하지만 그들의 정치의식 수준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높다고 생각해요. 이들이 앞으로 40~50대가 되서 우리 사회의 튼튼한 기반이 되고 좋은 사회를 만드는 바탕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이=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가 30대 후반이라고 생각이에요. 사업을 해도 그때 하라고들 말하는데, 그 시절은 자기 나름대로의 커리어(경력)와 자신감을 가지고 열매를 맺기도 하고 땅에 씨앗도 뿌리기도 하거든요. 자기 분야에서 이렇게 하려면 많이 영글어야 하는데, 요즘 386세대는 실제 자기 내용은 없고, 그래서 어른들에게는 ‘시건방진 것’처럼 보이는 거죠. 반면 20대들은 나름대로 순수함이 그대로 살아있어 보입니다. 한가지 문제는, 고이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하더라구요. 직업선택에서도 그래요. 직장이 겉보기에 번듯하지 않거나 ‘네가 좀 고생하면 괜찮을 거야’라고 하면 차라리 안다니고 놀겠다는 식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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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그런 젊은이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 저나 제 주위의 친구들을 보면 고생만 하고 어렵게 살고 있는데요. 개개인의 삶이 있는데 통째 묶어서 이렇다라고 말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이 많은 분들도 믿을만 하거나 롤모델로 따를 만한 분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잖아요. 세대갈등 이야기가 나왔는데, 서로 잘 만나지 않아서 더 소통이 힘든 것 같아요. 갈등이 있다고만 하지 말고 통로를 만들어 놓고 구체적으로 어떤 갈등이 있다, 이렇게 나갔으면 좋겠어요. 이=지난해에 이어서 올해도 좌우 대립구도는 없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국민들은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언제부터 우리 국민이 좌파였고, 우파였습니까? 정치권이 하는 얘기를 언론이 크게 확대시켰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발 좀 안그랬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외국하고 경쟁해야 할 때인데…. 좌파다 우파다 하면서 싸움만 하고 있으니 서민들이 더 힘든 겁니다. 문=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생산적인 대결구도가 아니라 서로 비방만 하는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 좋은 정책 내겠다고 경쟁하는게 아니잖아요. 법안 하나 가지고 몇 달을 끌고…. 이주노동자나 성매매 여성 문제에 대해서도 올해 실질적인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제대로 논의조차 안되고 있어 답답해요. 서=정치인들의 최우선의 목적이 집권에만 있기 때문에 그런 거라 생각합니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통해 검증받고 집권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상대방 흠집내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안없는 반대만 나오는 것이구요. 이=성경씨 말대로, 함께 좋은 정책 내놓고 싸우는 게 아니라 남의 것은 안된다는 식이죠. 우리는 너무 자기 얘기만 하고 남의 얘기는 안 들으려 해요. 내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만들어 놓고, 적을 이기는 걸 목표로 삼아 막 나가는 겁니다. 올해는 닭의 해지만, 싸움닭 되지 말고 모두다 병아리 많이 낳는 온화한 닭이 되면 좋겠어요. 싸움닭은 맛도 별로 없대요.(웃음) 문=우리 사회가 지난해에는 많은 여성 관련 이슈를 내놓아서 사람들이 계속 관심을 끌긴 했는데, 여전히 여성우위라는데 동의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광고회사 사장님도 오셨으니, 광고에서도 이런 문제 좀 생각해주시면 좋겠구요. 언론매체에서도 성 역할에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봄 춘(春)’자를 써가면서 성매매를 미화시키는 사람들이 있는데, 언론의 역할이 크다고 봅니다. 또 지난해 성매매 처벌법 등의 이슈가 잠깐 후끈 달아올랐다가 꺼지도록 하지 말고 꾸준히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이=여성 관련 문제는 참 겁나는 주제입니다.(웃음) 요즘 참 놀라운 것이, 어떤 기업(광고대행사)을 보면 직원의 30~40%가 여성입니다. 시험성적만 놓고 뽑으면 여자가 60~70%는 될 거예요. 그런데도 한편에선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남아있죠. 심지어 병원에서 의사를 뽑을 때도 가급적이면 남자를 뽑는다고 하더군요. 기업 내에서도 여직원은 많은데 시이오의 90%는 남성이구요. 근데, 지금 남녀공학 중고등학교를 보면 여자 학생회장이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답니다. 점점 차별을 겪지 않고 자란다는 것인데, 그 아이들이 자라면 지금같은 우리 사회의 성차별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아마 몇년 안에 여성상위 시대가 올 지도 모르죠. 우리집은 이미 여성상위인데…. 서=그래도 아직까지는 남자들이 누려왔던 기득권이 엄청난 거죠. 저는 당분간 여성의 권리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봐요. 남성들이 그 기득권을 쉽게 안 놓치려고 할테니까요. 문=영화제 관련 일을 하다보면 ‘누구는 정말 얼굴이 된다’는 식으로 능력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저는 ‘일로 평가하라’고 버럭 화를 냅니다. 지난해 성매매 처벌법 나왔을 때 걱정이, 성매매 여성들이 새출발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조건 ‘언제까지 성매매 끝내야 한다’는 식으로는 안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지난 한해 서민들을 짓눌렀던 불황에 대해 토론자들은 말을 줄였다. 너무 오래 계속된 불황의 그늘에 익숙해지거나 지쳐버렸기 때문일까. 불황보다 이들을 더 불안하고 화나게 만드는 다른 무엇이 있기 때문일까. 토론 끝에 닭띠들이 내린 2005년 소망은 ‘스트레스 없는 사회’였다. 이=우리나라 빈부격차에 대한 얘기를 해봅시다. 저는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빈부격차가 실제로 그렇게 크지는 않다고 봅니다. 지금은 기업 사장과 사원간의 임금격차도 5배 이내로 그다지 크지 않아요. 중국에 가면 잘 사는 사람은 엄청나게 잘 살고 그 수도 많아요. 또 보이지 않는 대다수 국민들 중엔 아주 극빈층도 많구요.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잘먹고 잘 살지 않나요? 언론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 공개를 하는데, 실제로 그런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에 재산 약 10억원 정도 가진 부자가 약 15만가구 정도 된다고 하는데, 예컨대 경기도 분당 지역 주민 규모정도 되는 거죠. 또 그들의 소비가 중국 부자들만큼도 되지 않거든요. 그래서 빈부격차 해소에 그렇게까지 매달려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실제로는 서민들이 예전에 중산층이라고 생각해오다가 요즘 하층으로 내려왔다는 느낌이 커진게 아닌가 합니다. 심리적 위축감이죠. 문/ 반항하는 애들은 다 생각있어 반항
이/ 언제부터 우리가 좌파·우파였습니다
서/ 그래도 아직 남자들 기득권 엄청나죠 서=빈부문제에서 ‘부’는 문제가 안될지 몰라도 ‘빈’은 문제가 됩니다. 대부분 잘 먹고 잘산다고 하셨지만, 사실 미국같은 경우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게 한국보다는 쉬울 것이라 생각해요. 빈부격차로 가난한 사람들이 분노감을 갖는 것은 별도로 하고, 최소한 극빈층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기부도 한 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저는 기부를 하고 싶어도 아직 적절한 통로를 못 찾겠더라구요. 기부금 내고 나서 나중에 어떻게 쓰였는지 모르거나, 또 알고나면 다시 내기가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이=저도 소년가장을 한명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가면 어려운 학생들 리스트가 죽 있는데, 한 학년에 한 열명 정도 있고 그 중 절반 정도는 후원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은 기부에 많이 인색만 면이 있습니다. 그런 방법 말고도 좀더 구체적으로 정부에서 방법을 찾는 것도 있어야 할 듯 합니다. 문=제가 요즘 많이 느끼는 것이, 주위에 어렵게 사는 노인들이 굉장히 많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노인들이 단지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정부지원을 못받는 경우가 많더군요. 자녀가 있다고 하면 어떤 사유를 대도 동사무소에서 딱 잘라버려요. 자녀가 있어도 비정규직인 경우에는 부모님이 아프거나 병원에 가야할 상황인데도 그 뒷바라지할 돈이 없는 경우도 있구요. 저도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답이 안나오더라구요. 비정규직이라 수입은 불규칙하고 물가는 오르고…. 법·제도적인 부분은 잘 모르지만 이런 문제는 올해 정책적으로 풀려나갔으면 좋겠어요. 이=우리나라가 진짜 스트레스가 많은 나라라는 걸 알게 됐어요. 28살짜리 제 조카가 심한 아토피로 고생을 했는데 얼마전 유학을 간 뒤로 다 나았어요. 집, 학교, 사회에서 주는 스트레스…서울에서 사는 환경 스트레스… 눈만 뜨면 싸움…어딜 가도 부딪히잖아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좁은 땅에서 살다보니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서=제가 항상 노력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내가 싫은 건 남도 싫다’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집에서도 ‘내가 하기 싫은 일은 아내도 하기 싫겠지’라고 돌아보려고 애쓰는 편이죠. 올해는 사람들이 부딪칠 때 마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충돌이 줄어들거라 믿습니다. 문=스트레스는 자기가 푸는 방법만 잘 개발하면 헤쳐나갈 수 있다고 보는데, 저는 우리 사회가 ‘너는 이래야한다’라고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자는 이래야한다’‘애들은 이래야 한다’는 것 말이죠. 젓가락질만 못해도 뭐라고 하시거든요. 강요가 줄어들고 좋은 에너지가 생기면 서로 나눌 수 있잖아요. 이=젓가락질 못한다고 뭐라하는 건, 음식을 잘 못집어 먹을까 봐 걱정되서 그런거예요.(웃음) 그건 강요라기보다는 잔소리죠. 제 아이만 해도 자기가 잘못한 것 아니라고 생각하면 버티더라구요. 그래서 ‘아빠생각은 이렇다’라고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조심스레 얘기해요. 젊은 직원들한테도 그렇게 합니다. 요즘 국민들은 다 이렇게 하는데, 정치권만 싸우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문=교육 문제와 연결시켜서 얘기하자면, 반항하는 아이들은 다 자기생각이 있어서 반항하는 거예요. 반항하는 애들은 논리적으로 얘기하거나 그 아이들이 원하는 걸 뚫어주면 되는데 우리 사회가 10대들에게 ‘너희는 미성숙하니 대학갈 때까지 무조건 내말을 듣고 따르라’고 하니까 다른 식으로 문제를 푸는 겁니다. 그리고 대학에 가는 방식도 좀더 다양해졌으면 좋겠어요. 만화를 잘 그리는 아이는 그걸로 대학갈 수 있도록 말이죠. 아직 우리 사회는 대학을 안가면 살아남기 힘들잖아요. 이=교육 문제 얘기만 나오면 정말 화가 납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물 흐르는대로 하면 되는데 억지로 통일시켜 놓고 그 제도권 안에서만 움직이라고 하니 모순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험문제도 이렇게 저렇게 꼬아서 제출하고…. 변별력도 없는 시험문제를 내서 한문제 틀리면 석차가 쭉 떨어지게 하는 그런 교육제도가 어딨습니까? 아이들도 이런 모순 속에서 살면서 모순적인 시각을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닭의 해에는 자기 울타리 안에서 열심히 내실을 기하면서 사는 해가 되면 좋겠어요. 상대방에게 스트레스 주는 일도 가급적이면 줄이구요. 사람들이 서로에게 주는 스트레스를 한 10%만 줄여도 참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 같습니다. 정리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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