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1.10 18:53 수정 : 2005.01.10 18:53

“선생님, 미국 가는 거 그만둘래요. 괜한 짓 했나봐요.” 민영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가 도와줄 것 같다고, 미국 가서 살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던 아이가 미국행을 포기해버린 것이다.

왜 미국을 가고 싶냐고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뻔한 이유…. 민영이는 흑인계 혼혈아다.

‘포기’의 대안으로 새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캐릭터 디자이너’가 꿈인 아이는 공부도 곧잘 하는데, 대학을 꼭 가기로 했다며 스스로의 다짐을 다독이고 있었다. 어머니가 병으로 드러누워 정기적인 수입원이 끊긴 지도 반년이 지났고, 그래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 보조금과 내가 근무하는 곳의 지원 등으로 생계는 근근이 유지하고 있는 터였다.

하지만 그토록 다니고 싶어하는 미술학원은 아이에겐 사치였다. 저녁 급식비를 내지 못해 야간자율학습을 마다해야 하는 처지에 한달에 수십만원에 달하는 레슨비가 웬말인가. 예전에는 자신보다 그림을 못 그렸던 친구들이 학원을 다니면서부터 자신보다 실력이 나아졌다며 아이는 기가 죽었다.

그러나 그나마도 지독한 가난과 엄마와 단둘이 살아야 하는 외로움은 참을 만하단다. 그것 때문에 미국에 가고 싶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지독하게 곱슬거리는 자신의 머리칼과 까만 피부가 ‘평범’할 수 있는 나라. 그 나라가 부러운 게다.

어쨌거나 아이는 미국 가는 게 ‘해결책’은 아니라고 결론을 지었다. 자신은 영어도 못하고, 설사 갈 수 있다고 해도 엄마를 두고 갈 자신도 없을뿐더러 가난과 외로움을 미국에서도 떨칠 자신이 없기 때문이란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이곳이 자신에겐 너무나 혹독하고 힘겨운 곳이었지만, 미국이라고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놀림당했던 지난날을 이야기할 땐 민영이는 늘 눈물 감당을 못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야기할 때마다 저렇게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일까. 학교의 선생님들도, 놀리는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그 어느 누구도 그래서는 안된다고 타이르는 ‘어른’은 없었다. 늘 혼자 감당해야 하는 혼자만의 몫이었다.

그 와중에도 민영이는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얼굴 드러나는 것이 죽기보다 싫고 집에서조차 모자를 썼던 아이는 ‘네가 힘들었던 것들을 왜 너만 알고 있어야 하느냐,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고쳐진다’라고 매몰차게 이야기하는 나에게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처받고 숨기 바빴던 아이가 세상에 나가는 것을 꺼리지 않고, 자신이 잘못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인식이 틀렸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태까지 아이가 받았던 이만큼의 상처, 혼자 감당해야 했던 외로움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할까.


민영이는 학교에서의 적응방법을 깨달았다고 이야기했다. 죽기살기로 공부하니까 자신을 놀림감으로만 생각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쟤는 생긴 것과는 달리 공부는 잘한다’며 아이들의 비아냥거림도 예전과는 좀 달라졌단다.

아무도 일러주지 않았는데 민영이는 자신만의 ‘생존방법’을 혼자서 터득한 후, 자신의 외모가 평범할 수 있는 나라를 마다하고 이곳에 주저앉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이의 선택이 잘한 것이라는 걸 우리가 과연 보여줄 수 있을까. 행여나 꿈을 접지 않도록 아이가 빨리 느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지영/펄벅재단 사회복지사, 간호사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