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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학생을 얼마나 더 괴롭혀야 시원할까

등록 2008-04-15 22:57

사설
이명박 정부가 대학입시 자율화 정책에 이어 어제 초·중등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학교 운영에 관한 권한을 학교장에게, 초·중등 교육에 관한 권한은 시·도 교육감에게 넘긴다는 게 뼈대다. 각 학교로 하여금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을 하도록 하고, 각 시·도가 지역 실정에 맞는 교육 정책을 펴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나무랄 데 없는 취지다.

그러나 이 정책은 우리의 교육 현실을 철저하게 무시한 결과, 학교 교육을 왜곡시키고, 학생과 학부모의 고통만 배가할 가능성이 크다. 대학입시 자율화는 이미 대학들로 하여금 점수제 선발로 회귀하게 했다. 각 고교는 이에 맞춰 문제풀이식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그런 시점에서 정부가 학교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이제 획일적인 보충수업과 0교시 수업이 부활하고, 다양성 교육을 위한 방과후 학교가 사라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여기에 학원 강사를 학교로 불러들이고 사설 모의고사도 치를 수 있으니, 학교가 입시학원으로 변질되는 걸 어떻게 막을까. 아무리 훌륭한 교육철학을 갖고 있는 학교장이라도, 입시 성적으로 능력을 평가받는 현실에서 달리 선택할 방도는 없을 것이다. 창의성 인성 교육을 실시하다가는 무능력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권한이 대폭 강화된 시·도 교육감에게도 기대를 걸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들은 시·도 사이 경쟁에서 앞서고자 학교간 경쟁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이미 일제고사를 부활시켰고, 학교별 혹은 학생별 성적순 줄세우기를 시도하고 있다. 일부 교육감은 일제고사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교에 대해 포상금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학교에선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아예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도록 제외하기도 했다.

학교 자율화가 정착되려면, 먼저 입시교육이 혁파돼야 한다. 아울러 교육 주체인 교직원·학생·학부모가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갖는, 학교 민주주의가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 이를 막은 것은 학교장이나 재단의 전횡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이들의 권한만 늘리겠다고 한다. 그러면 얼마나 더 우리 교육은 왜곡되고, 학생은 고통을 당하게 될까. 교육 현실에 대한 이 정부의 무지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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