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삼성이 지난 4월 내놓은 경영 쇄신안에 따른 후속 조처를 어제 발표했다. 열 가지 쇄신안 가운데 시간이 필요한 지배구조 개선 등 세 항목을 제외한 일곱 가지를 마무리했다. 그룹경영 체제에서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로 전환할 기본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그룹경영 체제를 탈피하지 못하고 사장단협의회를 새로 만드는 등 미흡한 측면도 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 사원 신분을 정리하고 형식상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난다고 한다. 앞으로 대주주 자격으로 그룹 경영에 관여할 여지는 남아 있지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취지는 제대로 지켜야 한다. 이 회장은 그동안 보유 지분에 비해 과도한 경영 개입을 해 왔다. 심지어 주식이 한 주도 없는 계열사의 경영까지 시시콜콜하게 관여하기도 했다. 이제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만큼 대주주로서 어떤 역할이 적합한지를 새롭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전략기획실의 해체를 두고도 말이 많다. 그동안 전략기획실이 그룹차원의 전략적 투자를 결정하는 등 삼성 경영의 핵심 역할을 해 왔는데, 그런 조직이 없어지면 계열사들이 과연 제대로 경영을 해나갈지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삼성이 이만큼 성장한 데는 전략기획실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전략기획실은 그 자체가 편법 조직이다. 또한,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계열사들 위에 군림해 왔다.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많았던 전략기획실의 해체는 당연하다.
문제는 전략기획실을 해체한 뒤 어떻게 할 것이냐다. 삼성은 전략기획실의 일부 기능을 대신할 투자조정위원회와 브랜드관리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하기로 했다. 계열사의 독립경영 체제가 곧바로 자리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한 불가피한 조처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 또한 최소한의 역할에 머물고, 될수록 이른 시일 안에 지주회사 체제 등 합법적인 지배구조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앞세워 이들 조직을 점차 확대하고, 그 역할을 강화하려 해서는 삼성 쇄신의 빛이 바랜다.
삼성이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은 각 계열사들이 명실상부한 독립경영 체제로 경쟁력을 키워가고, 이건희 회장은 대주주로서 최소한의 역할에 머무는 것이다. 또다시 전근대적인 족벌경영 체제로 돌아가려 해서는 삼성의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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