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울시는 25일 저녁 본관 철거 계획을 기습적으로 문화재청에 통보한다. 문화재청은 보류 요청과 함께 문화재위원회에 이를 알린다. 문화재위원회는 서둘러 이튿날 오후 4시 사적 및 등록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 공동회의를 소집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26일 아침 본관 태평홀 등을 부수기 시작한다. 오후 5시 문화재위원회가 사적으로 가(임시)지정하고, 통보했을 때 태평홀은 이미 반파된 상태였다. 문화재위는 복원을 요구하며 분통을 터뜨렸고, 서울시장은 가지정의 부당함을 따지는 법적 대응을 공언하며 2차전을 벼르는 게 지금의 형국이다. 국가기관 사이에 벌어지는 드잡이는 이제 점입가경을 지나 목불인견에 이르렀다.
백주 대낮에 국가 문화재에 대해 ‘테러’를 가했으니, 서울시는 입이 열이라도 할말이 없다. 문화재위의 일처리가 불만스럽고, 의사결정 과정이 아무리 느려터지더라도, 공공기관으로서 서울시는 문화재위의 권고를 따라야 했다. 소유자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게 등록문화재라지만, 공공기관이 국가기관의 권고를 무시한다면, 어떤 등록문화재 소유자가 당국의 권고에 따를까. 전례도 없었다.
문화재위 역시 비판받아 마땅하다. 2006년 초 서울시가 신청사 건립계획을 발표한 뒤 문화재위는 여섯차례에 걸친 심의 끝에 계획을 승인했다. 서울시는 이미 5월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설계상으로도 본관의 태평홀과 청사 북쪽 날개가 훼손당할 가능성이 컸다. 사적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진작에 지정문화재로 격을 높여야 했다. 불도저가 삽날을 들이대고서야 가지정을 했으니 어떻게 그 책임을 피할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다. 두 기관의 싸움 속에서 문화재 정책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는 까닭이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제3의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사실 지금 시청 자리를 신청사 터로 고집할 일은 아니었다. 그곳은 이제 상징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서울의 중심으로서 의미가 퇴색됐다. 주변의 콘크리트 장벽 속에선, 아무리 훌륭한 건축물을 세워도 디자인 서울의 표지나 상징으로 기능하기 어렵다. 용산 한강변 등 여러 터가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이 때문이다. 시청 일대는 주변의 숭례문, 덕수궁, 원구단 등과 함께 명실공히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살려내 시민에게 돌려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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