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더라도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는 빼 달라고 정부와 여당에 요구했다고 한다. 정부·여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금산 분리 규제완화 차원에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은 에버랜드-삼성생명으로 이어지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뒤에도 삼성전자는 그 체제에 편입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여러 경로로 접촉했다는 것이다.
현재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 7.2%를 가진 최대주주다. 삼성이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규정상 생명은 갖고 있는 전자 주식 일부를 팔아 전자의 2대 주주인 삼성물산의 지분 아래로 낮춰야 한다. 삼성은 이 경우 전자에 대한 경영권이 약화된다며 난색이다. 보험 자회사가 비금융 손자회사를 가질 수 있도록 허용돼도, 자회사 지분을 30% 이상 가져야 하기 때문에 생명은 전자 지분을 더 취득해야 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20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요컨대 삼성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더라도 지금의 지배구조를 그대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삼성의 그러한 요구는 특혜를 달라는 것으로, 지주회사 제도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주회사 체제는 순환출자에 의존하고 있는 재벌의 후진적 지배구조를 간결 투명하게 만들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삼성이 전자를 지배하는 데도 법적으로 지배하지 않는 것처럼 한다면 순환출자 구조를 눈감아 주는 것이다. 이미 막대한 비용을 들여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엘지 등 다른 그룹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삼성은 총수 일가의 사적 이익을 위해 법질서를 어지럽힌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법을 교묘히 이용하고 로비를 벌여 법을 고쳐서라도 이득을 취하려 한 게 불법 로비와 경영권 승계 문제의 본질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삼성 예외주의가 꿈틀댄다니 놀랍다. 지주회사로 전환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가능한데도, 비용을 들이지 않고 하려는 것이다. 계열사 자율·독립경영 약속과 달리 그룹 차원의 로비가 사라지지 않은 점도 우려된다.
한나라당 한쪽에서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이 안 되면 법 개정의 의미가 없으니 쉽게 전환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자는 움직임이 있다고 하는데, 특혜를 주자는 것으로 온당치 못하다. 지주회사법 개정을 포함해 금산 분리 완화는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므로 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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