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 그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여론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서울대 총장 출신의 양심적인 경제학자라고 해서 기대가 컸는데, 청문회를 지켜보니 ‘상위 1%의 전형적인 기득권층’이더라는 것이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당이 어제 심사보고서 채택을 위한 국회 총리인사청문특위에 불참한 것은, 정부·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정치적인 속셈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싸늘한 여론을 반영한 측면이 크다.
정 후보자는 청문회 전부터 배우자 위장전입, 병역 기피, 다운계약서 작성, 소득세 탈루, 논문 중복 게재, 사기업체 고문 겸직 등 무려 여섯 가지 분야에 걸쳐 의혹을 받았다. 모두 공직자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과 관련한 것들이다. 하지만 정 후보는 청문회 과정에서 어느 의혹 하나 속시원히 불식하지 못했다. 오히려 삼성의 ‘비공식 자문위원’ 활동, 아들의 국적 포기 만류, 기업인으로부터 1000만원 ‘용돈’ 수수 등의 새로운 사실과 의혹이 드러났다.
이것만으로도 결격 사유가 충분하다. 같은 총장 출신만 봐도, 김대중 정권 때의 송자(연세대) 교육부총리는 부인과 딸의 이중 국적 문제로 사퇴했고, 노무현 정권 때의 이기준(서울대) 교육부총리는 총장 재직 때 사외이사 겸직 사실이 드러나 물러났다. 김대중 정권 때의 장상(이화여대) 총리 서리도 위장전입 등의 이유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정 후보자는 이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정 후보자의 자세와 인식이다. 그는 1000만원을 ‘궁핍’하지 말라고 용돈으로 받았다고 했다. 월급 100만원짜리 일자리도 못 구하는 청년 실업자들이 숱한데, 서민 총리를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할 말이 아니다. 아들이 먼저 미국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했는데도 자신이 말렸다는 것도 아버지로서 애틋한 사랑의 표시일 수는 있겠지만 국정의 큰 책임을 질 총리 후보자로선 걸맞지 않다. 그는 삼성의 자문위원 여부, 수입과 지출의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을 회피한다. 구린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고 간주할 수밖에 없다.
정 후보자는 인준 통과를 위해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계속하고 있다. 그보다는 스스로 우리 사회가 쌓아온 공직자 윤리 기준에 맞는 사람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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