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문화방송의 보도·제작 책임자를 일방적으로 선임한 의도가 정권의 문화방송 장악을 충실하게 뒷받침하는 데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방문진의 정부 쪽 이사들이 방문진 설립 취지는 물론 관련 법 규정을 멋대로 짓밟았다는 사실만큼은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만행은 단지 문화방송 사장의 이사진 추천 관례를 무시했다는 점에서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문화방송의 소유, 경영, 보도·제작을 분리함으로써 정치적 독립성과 공공성을 확보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설립한 방문진의 존재 이유를 부정했다는 데 있다.
방문진은 문화방송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통해 공영방송으로서의 독립성을 제도화하기 위해 1988년 설립됐다. 방문진법이 “(문화방송의) 공적 책임을 실현하고 민주적이며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의 진흥”에 이바지하는 걸 방문진의 목적으로 규정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이 방문진의 업무를 연구 및 학술사업, 문화방송의 경영에 대한 관리 및 감독, 방송문화진흥자금의 운용·관리 등으로 제한한 것도 이런 취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법은 어디에서도, 방문진이 방송 내용을 좌우할 문화방송 인사에 개입할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이번에 방문진이 일방적으로 뽑은 이사들은 문화방송의 경영부문 책임자가 아니라 보도와 프로그램 제작 책임자들이었다. 경영에 직접 개입할 권한도 없는 방문진이 사장을 따돌리면서 보도·제작 부문까지 통제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런 이중삼중의 월권의 목적이 공영방송의 기능을 무력화하고 이 방송을 정권의 소유물로 하겠다는 것임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공영방송이 제대로 서려면 소유와 경영의 분리뿐 아니라, 보도·제작의 소유·경영으로부터 독립도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경영 실적을 위해서 특정 뉴스를 보도하지 않거나 공익적 프로그램을 위축시키는 걸 막을 길이 없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킬 책임이 있는 이사들이 독립성을 부정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해임 사유가 된다. 나아가 그런 사람들로 구성된 방문진이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방문진법의 취지를 생각한다면 정부 쪽 이사들은 즉각 퇴진해야 한다. 나아가 방송의 독립성을 확고히 보장할 새로운 틀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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