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18 18:27
수정 : 2005.01.18 18:27
우리나라의 대표적 우량기업인 삼성전자의 예를 들어 우리 기업의 의미와 우리 기업을 지키는 방법을 살펴보자. 기업의 국적을 말할 때 흔히 자본의 국적을 따진다. 그렇다면 외국인 주주의 지분이 50%를 넘는 삼성전자는 외국회사인가. 수천명에 이르는 삼성전자의 외국인 주주는 국적이 매우 다양할 뿐 아니라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서 외국자본이 절반을 넘는다고 해서 삼성전자를 외국기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영업내용을 보면 삼성전자의 국적은 더욱 모호해진다. 삼성전자는 매출의 80% 이상을 국외에서 판매하고 이익의 90% 이상을 국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전체 매출 중에서 국내에서 판매한 것은 20%도 안 된다. 영업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삼성전자는 국내기업이 아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분명히 우리 기업이다. 그 이유는 삼성전자가 만들어내는 부가가치의 대부분이 우리나라에 남기 때문이다.
기업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는 크게 임금, 세금, 그리고 주가로 전환되는 순이익이다. 기업의 국적은 자본의 국적이 아니라 기업이 만들어낸 부가가치의 얼마만큼이 어느 나라에 귀속되느냐에 따라 판단할 문제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3분기까지 만들어낸 전체 13조원이 넘는 부가가치 중에서 외국인 주주에게 배당으로 돌아간 것은 7%에 불과한 9천억원 정도다. 같은 기간에 주가 상승으로 인한 시세차익까지 합해도 외국인 주주들에게 돌아간 이익은 전체 부가가치의 12% 정도인 1조6천억원 정도다. 이는 삼성전자가 우리나라에서 지급한 임금과 세금만으로 창출된 부가가치인 4조3천억원과 비교를 해도 일부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자본의 절반 이상을 외국자본으로 충당하고 매출과 이익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벌어들이는 국제적인 기업이지만 부가가치의 대부분이 우리나라에 귀속되고 있으니 분명한 우리 기업이다. 설령 100% 외국자본으로 설립된 회사라 할지라도 우리나라에서 지급된 임금과 세금이 배당이나 주가차익으로 얻은 이익보다 크다면 그런 기업은 우리 기업인 것이다. 따라서 자본의 국적만으로 기업의 국적을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더구나 외국인 지분이 많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경영권 지키기를 논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다.
삼성전자 외국인 주주들의 절대다수는 경영권 인수를 시도한 전력이 없는 펀드투자 회사들이다. 다양한 국적과 투자 목적을 가진 펀드투자 회사들이 담합해서 경영권에 도전했다는 사례는 어느 나라에서도 없었다. 따라서 외국인 지분이 절반을 넘는다는 것만으로 경영권을 도전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특정 재벌 대주주의 선동에 불과하다. 우리 기업을 우리가 지켜야 하는 이유는 외국인 지분이 높아서가 아니라 더 많은 부가가치가 계속해서 우리나라에 남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외국인 지분이 너무 많아서 우리 기업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가 외국으로 더 많이 빠져나갈 것을 우려한다면 이를 지키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경영권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경영을 잘하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우리 기업이 경영을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의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한다면 이는 삼성전자가 경영을 잘못하여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며, 이로 인한 주가폭락은 엄청난 국부손실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 기업을 우리가 지키는 또다른 방법은 우리가 우리 기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다. 외국인 주주들이 우리 기업의 주식을 강제로 탈취해간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주주들이 판 주식을 시장에서 공개적으로 사들인 것이다. 오히려 우리 기업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는 것은 외국인 투자자에게 주식을 팔아치운 국내 투자자들이다. 사이비 민족주의를 내세워 외국인 투자자를 투기꾼이나 기업사냥꾼으로 근거 없이 매도하는 것은 감정적인 분풀이일 뿐이다. 부동산 투기와 단기 자금시장에 떠돌고 있는 수백조원의 국내 부동자금과 장기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 또다른 수백조원의 연기금들로 하여금 우리 기업에 투자하게 하는 게 우리 기업을 지키는 방법인 것이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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