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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김효순 칼럼] 강정의 외부 사람들

등록 2011-09-05 19:15

김효순 대기자
김효순 대기자
며칠 전 온라인으로 일본 신문들을 건성으로 보다가 ‘자이니치 여성, 눈물의 여행길’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기사의 첫머리를 읽어보았다. 90살을 맞은 한 재일 코리안 여성이 8월 초순, 77년 동안 살았던 일본을 뒤로하고 한반도로 돌아갔다는 말로 시작됐다. 할머니의 이름은 제주도 출신의 고오생, 13살 때 오사카에 거주하던 아버지를 찾아 일본에 왔다. 재일동포들에 대한 고령연금 수급 차별을 문제 삼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하자 귀국을 결심했다고 한다.

익히 들었음 직한 사연의 소유자로 생각돼 다른 뉴스거리로 넘어가려다 보니 귀국 경로가 희한했다. 간사이국제공항에서 중국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갔다. 아니 요즘 세상에 북에 정착하겠다며 가는 사람이 있다니…. 고향인 제주도로 향했으리라고 지레 짚었다가 허를 찔렸다. 아들 가족이 평양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아들이 재일동포들의 ‘북송’(총련이나 북한에서는 귀국사업이라고 한다) 때 북한으로 간 모양이다.

현대사의 감춰졌던 아픈 상처가 확 모습을 드러내는 느낌이었다. 오사카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간사이지방의 동포사회는 제주도 사람을 빼고서는 얘기할 수가 없다. 8·15 해방 뒤에도 귀국해봤자 비빌 데가 없어 주저앉은 사람들에다 좌우대립에 따른 정정불안, 4·3 사건, 한국전쟁의 여파로 많은 이들이 밀항선 등을 타고 건너와 합류했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없어 빈둥거리며 소일하던 남성들을 대신해 실질적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진 이들은 여성이었다. 고 할머니도 억척같은 생활력으로 동포사회의 초석을 놓은 동포 1세 여성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가 어린 나이에 제주를 떠난 이후 단 한번이라도 고향땅을 밟았는지 모르겠다.

4·3 사건의 정신적 상흔이 깊게 드리워져 있는 제주도가 군항 건설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몇 군데를 돌다가 후보지로 낙점된 강정에는 기지 건설에 대한 견해 차이로 동네 사람들 사이에도 대화가 끊겼다고 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이름조차 생소하던 평온한 바닷가 마을의 공동체가 붕괴 직전에 이른 것이다. 국방부가 군항 건설의 필요성으로 내세우는 주된 논거는 해상수송로 방어이다. 대외교역 의존도가 높은 경제상황에서 원유 등 주요 물자의 수송로 안전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어감이 다르겠지만, 나는 1980년대 초반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일본 총리가 강하게 밀어붙였던 ‘해상수송로 1000해리 방위구상’이 연상된다. 미-소 냉전의 격화를 배경으로 한 이 구상은 일본이 국방예산을 대폭 늘려 군사력을 확충하고, 미국의 첨단무기를 도입함으로써 미국과의 무역마찰을 줄이는 데 이용됐다.

지금은 미국과 소련이 치열한 군확 경쟁을 벌이며 으르렁대던 시절이 아니다. 외신기사에 단골처럼 등장하던 믈라카해협의 해적 출몰 얘기가 쑥 들어간 지도 제법 오래됐다. 물론 동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 상태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중국의 항모 건조를 둘러싸고 미-중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일본도 사태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당사국들 사이에 신뢰관계가 조성되지 않으면 항모 건조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판에 주변 국가의 의구심이나 오판을 부추기는 것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냉철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강정 사태를 악화시킨 주범은 당국이 지목하는 외부세력이 아니라 일방통행식 정책결정이다. 다수의 현지 주민이 참여하지 않은 주민투표 결과를 근거로 군항 건설을 강행하는 것은 군사독재정권 시대의 유습이다. 안보정책도 당국의 밀실 결정이 아니라 현지 주민과 민간인 전문가들이 포함된 공론장에서 기탄없는 논의를 거쳐야 튼실해진다. 분단과 군사대치라는 멍에를 지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군축·평화 문제는 시민운동에서도 가장 낙후된 분야이다. 세상이 많이 달라지긴 했어도 핵 군축, 집속탄, 대인지뢰, 열화우라늄탄 문제 등에 대한 관심은 아주 낮은 편이다. 그런 점에서 군축·평화 문제에 관한 ‘외부세력’은 많아질수록 좋다. 안보 논의가 권력의 눈 부라림으로 막히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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