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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도종환 시 삭제 논란과 ‘문학 연좌제’

등록 2012-07-09 19:05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도종환 의원(민주통합당)의 작품을 국어 교과서에서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국어 교과서는 검정이므로 평가원의 권고를 출판사가 무조건 수용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권고의 거부는 곧 탈락을 의미할 가능성이 큰 만큼 출판사 처지에선 지시보다 더 강한 명령이다.

도 의원의 교과서 수록 작품은 그가 국회의원 되기 10년 전부터 선정됐다. 작품의 문학적 성취와 독자 평가 그리고 교육성은 지난 10년여에 걸쳐 평가를 받은 셈이다. 지금 8개 교과서에 12편이나 실린 것은 그 결과일 터다. 그런 작품을 작가가 야당 의원이 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돌연 교과서에서 빼라고 했으니 논란이 없을 수 없다. 작가회의나 전국국어교사모임 등은 성명이나 논평을 통해 공개적으로 반교육성을 문제삼았다. 공연한 시비가 이 정부의 저급한 문화적 수준을 다시금 드러낸 셈이다.

물론 검정 기준엔 교육과 교육내용의 중립성 항목이 있다. 정치적 편견 전달이나 특정 정당의 선전 혹은 비방에 이용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교과서에 작품이 실리면 작가를 소개해야 하는데 그것을 선전에 이용된다고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아이들 수준을 얕잡아보거나, 작품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작가로부터 독립한 존재라는 상식을 외면한 발상이다. 현대 민주사회에서 작품을 작품 자체로 평가하지 않고, 작가의 정치적 노선에 따라 평가하고 처단하는 ‘연좌제’를 적용하는 나라는 없다. 극소수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이뤄질까.

작가 앙드레 말로는 좌파 공산주의자에서 우파 드골주의자로 변신했지만, 프랑스의 좌·우파 어떤 정권도 그의 작품을 배척하지 않았다. 중국 혁명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조건>은 여전히 필독서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도 아옌데 사회당 정권 수립에 앞장섰지만, 피노체트 군부독재 때를 제외하고 그의 시는 언제나 학생들의 필독서였다. 세네갈은 아예 시인(레오폴드 세다르 상고르) 대통령을 선출해 20년간 정권을 맡겼다.

교과서가 특정 정치적 이념에 이용돼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이런 기준을 작가의 작품을 배제하는 데 악용해서도 안 된다. 김춘수 시인이 민정당 국회의원 때건 아니건, 그의 시는 교과서에 실렸다. 또 여당 공천심사위원을 지낸 이문열씨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그걸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인간이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와 다른 독립된 존재인 것처럼, 작품 또한 작가로부터 독립된 존재라는 사실만큼은 확인하고 싶다. 정치권 눈치 보느라 교육기관이 기본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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