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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미, 낙태 ‘불꽃 논쟁’ 기름 부었나

등록 2005-01-24 16:17수정 2005-01-24 16:17



△ 지난해 4월25일 미국 워싱턴의 펜실베이니아가에서 전세계 60개국에서 모여든 수십만명의 여성·시민단체 회원들이 낙태권을 위협하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자, 낙태반대 운동단체들도 이에 질세라 대응집회를 열었다. 사진은 두 집회 참석자들이 거리에서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입씨름을 벌이고 있는 모습. 워싱턴/AP 연합

■ 낙태권리 이끌어낸 여성 32년만에 대법에 재심요구

민주 84% 낙태 찬성-공화 88% 반대
부시 ‘도덕적 가치’ 대대적 공세펼듯

조지 부시 행정부 집권 2기를 맞은 미국이 심상찮다.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붉은 색(공화당 우세지역)과 파란색(민주당 우세지역)으로 갈려 극단적으로 맞섰던 여론은 선거가 끝난 지 두달이 넘도록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이제부터 본격적인 ‘색깔논쟁’이 벌어질 기세다. 낙태를 여성의 권리로 인정한 미 대법원의 역사적인 판결인 ‘로 대 웨이드’ 사건에 대한 지난 18일의 재심 청구는 그 서막인 셈이다.

진보-보수 감별 ‘리트머스 시험지’


낙태, 다시 대법원으로=<에이피통신>은 20일 “낙태를 금지한 텍사스주 법률이 위헌이라며 헨리 웨이드 당시 텍사스주 법무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내 1973년 1월 미 대법원의 낙태권 인정 판결을 이끌어 냈던 ‘로 대 웨이드’ 사건의 핵심 원고 노마 맥코비(58·가명 제인 로)가 판결이 난 지 32년 만에 이에 대한 재심을 미 대법원에 정식으로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미 연방법은 사실관계나 법률의 변화가 있을 경우 소송 원고가 판결의 번복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맥코비는 “낙태가 여성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친다는 새로운 증거가 속출하고 있다”며 1천여명의 증언과 함께 대법원에 청원서를 냈다.

중학교 3학년 때 중퇴한 뒤 재판 당시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미 세번째 아이를 임신했던 맥코비는 낙태권 인정 판결 뒤 7년여 동안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살았다. 그러다 1980년 한 지역방송을 통해 ‘커밍아웃’을 하고 정열적인 낙태찬성 운동가로 나서더니, 95년 낙태반대 운동가 필립 벤험 목사한테서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 뒤 ‘개심’해 낙태 반대운동에 뛰어들었다. 97년 가톨릭으로 개종한 그는 이듬해 ‘로 노 모어’(더는 ‘로’가 아니다)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자신의 사건에 대한 재심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색깔논쟁’의 핵심=‘로 대 웨이드’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뒤 낙태에 대한 찬반 양론은 미국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됐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보면, 2002년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84%가 낙태권을 인정한 반면 공화당 지지자는 88%가 반대했을 정도로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극단적인 대립양상을 띠고 있다. 낙태권 인정 판결이 나온 직후부터 보수진영에선 이를 ‘유아살해를 용인한 꼴’이라며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고, 일부에선 이 판결이 “기독교 우파 정치운동의 시발점이 됐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보수적인 주정부들은 지난 30여년 동안 대법원의 판결을 피할 수 있는 예외조항 찾기에 분주했다. 낙태를 원하는 청소년에게 부모의 동의를 받게 하거나 법원 청문회에 출석해 자신들이 낙태를 결정할 만큼 충분히 ‘성숙’하다고 판사를 설득하도록 제한하는 일부 주 정부 법률이 79년 합헌판결을 받았다. 또 저소득층 여성을 겨냥해서는 낙태시술을 의료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는 ‘하이드 개정안’이 논란 끝에 80년 대법원에서 5대 4로 합헌판결을 얻기도 했다.

반면 캘리포니아·미시간·버몬트·미네소타·뉴욕 등 5개주에선 일찌감치 ‘로 대 웨이드’ 사건을 지지하는 주의회 차원의 결의안을 내거나, 낙태여성과 낙태시술소 보호 법률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들 주는 2000년에 이어 지난해 대선에서도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높았던 이른바 ‘블루 스테이트(파란색 주)’들이다.

임신중반 이후 시술 의사에 징역형

부시 2기, 심상찮다=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90년대 중반 이후엔 낙태권 논쟁은 이른바 ‘부분 출산(임신 중반기 이후) 낙태 금지법’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공화당은 95년 이후 이 법안 통과를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96년 4월과 97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거부권을 행사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 상황이 반전되면서 임신 중반기 이후 여성에게 낙태시술을 한 의사에게 최고 징역 2년형까지 처할 수 있는 내용을 뼈대로 한 법안이 2003년 10월 상하 양원을 통과해 그해 11월5일 부시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발효됐다.

진보진영도 즉각 반격에 나서 전미민권연맹(ACLU)를 비롯한 각 단체에서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한 당일부터 이 법의 위헌 소송을 제기하면서, 일부 주에선 법 집행에 제동이 걸렸고 관련 소송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전미낙태권연맹(NAF)이 지난 21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 한 해만도 44개주에서 500여건 이상의 낙태제한 법률안이 논의됐다.

기독교 우파세력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재선에 성공한 부시 대통령은 집권 2기동안 낙태·동성결혼 등 이른바 ‘도덕적 가치’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지난해 선거운동 기간부터 일찌감치 예고한 바 있다. 특히 낙태권의 운명을 결정할 대법관 가운데 일부가 부시 대통령의 임기 동안 고령 등으로 은퇴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아, 후임 인선 과정에서 낙태를 둘러싼 논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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