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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적 한-일 협정 과제
한-일 협정 문서 일부가 공개되자 일제 피해자들은 울분을 참지 못했다. 개인배상마저 당시 한국정부와 일본정부가 정치적 거래로 가로챈 꼴이니 말이다. 일제 피해자들의 개인보상 등 남은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홍세화 기획위원이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을 지난 19일 국회의사당 근처에서 만나 물었다. 이 의원은 1964년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에 반발했던 ‘6·3 학생운동’에 가담했고 현재는 한-일 협정 주체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기 때문이다.
홍세화
“적잖은 한나라 지지세력 경제성장 종잣돈 불가피 시각” 이재오 “통치 취약기반 강화목적일 뿐 근대화 이유라면 더 받았어야” 이재오 의원과 홍세화 기획위원은 만난 적은 없지만 인연이 있다. ‘반외세 민족주의, 반독재 민주주의’를 내걸고 학생운동 세력 등이 모인 남조선민족해방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으로 이 의원은 5년형을 선고 받았다. 홍 위원도 같은 사건으로 프랑스로 망명해 20여년 동안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 의원은 “몇 년이나 프랑스에 있었나”라고 물으며 갑자기 “여러가지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해를 거슬러 올라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한 뒤 홍 위원이 질문으로 대담을 시작했다. 홍세화=최근 한-일 협정 문서 일부가 공개됐습니다. 한국정부가 청구권을 거의 포기하고 경제협력자금을 받았더군요.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재오=이 협정에선 을사조약, 병합조약 등 한-일 사이에 있었던 조약들을 ‘이미 무료로 한다’라고 애매하게 처리했어요. 조약의 체결 시점부터 무효라고 해야 일본 통치가 불법이니까 청구권이나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데 말이죠. ‘이미 무효’라는 건 체결 당시엔 합법이라는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 거죠. 일본과 다시 협상해 이 부분을 분명히하고 사죄도 받고, 개인배상, 국가배상 문제도 풀어야죠. 또 한-일 관계에서 한국을 유일한 합법정부로 한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 당시 남북을 통털어 남한 정부가 대표하도록 해석한 것은 한국과 일본정부가 바로잡아야 합니다. 북한이 일본과 협상할 길은 열려있고 이를 방해해서는 안 되죠. 말씀하신대로 우리 정부가 서둘러 개인배상을 막아버렸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30억달러까지 요구했는데 군사정부는 3억6천만달러로 양보했어요. 게다가 일부 피해자에게만 당시 30만원씩 주고 나머지는 경제개발에 썼다는데 그렇게 쓸 돈이 아니죠. 당시엔 징용자, 강제노무자, 위안부 등의 명단을 우리 정부가 갖고 있지 못해 졸속으로 협상했습니다. 그 뒤 일본이 이런 문건을 보내줬는데도 우리가 공개를 안 한 겁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도 한-일관계 대책에 소홀했던 거죠. 한국정부는 피해자 명단을 공개하고 본인들에게 통보해야 해요. 또 중요한 건 추후 문건 공개입니다. 일본에도 요구해야죠. 미국 중앙정보국(CIA) 특별문건을 보면 일본기업들이 6600만달러를 군사정권의 실세에 정치자금으로 줬다는 거 아닙니까? 그 실체를 밝혀야죠. 한-일 협상 관계자는 참회하고 진상을 다 공개해야 합니다. 야당은 정치적 의도를 내세워서 한-일협정의 진상, 그 굴욕적이고 졸속인 진상을 은폐하거나 비껴가려고 해서는 안돼요. 홍/ 4년 강점당한 필리핀 청구액은 5억 5천만 달러인데 우리는…
이/ 이승만 정부는 30억달러 요구 다시 협상해서 사죄 받아야… 홍=필리핀이 일제에 4년간 강점당한데 대한 청구권으로 받은 금액이 5억5천만달러 정도랍니다. 우리는 3억6천만달러 청구했는데 그만큼 아주 졸속으로 굴욕적으로 협상한 것이죠. 결국 일제 부역했던 세력, 또는 거기에 뿌리를 둔 세력이 강점기에 희생당한 동족의 피해 배상금을 통치자금으로 쓰는 참 기막힌 이야기가 되죠. 이=그렇게 정리할 수도 있겠죠. 건국 뒤에 정부에서 친일한 사람들을 등용해서 썼잖습니까? 5·16 쿠데타 뒤에도 마찬가지고요. 일본군 출신이 정부 요소에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을 1년만 겪은 버마도 국가적 배상을 받았는데 우리는 정말 말도 안 되게 했어요. 국회에서 진상조사특위를 만들어 굴욕적인 처리의 정치적 의도는 뭐였는지, 협상 주체들에 대해 조사해야 합니다. 더욱 용서할 수 없는 건 국민과 학생들의 올바른 지적을 총칼로 막았다는 거죠. 비상계엄령 선포하고 학교에서 제적시키고 내란음모까지 덧씌워 잡아갔습니다. 그렇게 강압적으로 국민의 반대를 무마하고 한 일이 고작 나라 자존심을 팔아먹었던 겁니다. 홍=야당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충돌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성격이 바로 박정희 쿠데타 세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죠. 또 적지 않은 한나라당 지지 세력은 개인배상금을 경제성장의 종자돈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어불성설이죠. 변명이고 회피입니다. 그 논리대로 산업근대화를 위해서라면 돈을 더 받았어야죠. 쿠데타 정권 이전 정부만 해도 개인 손해 얼마, 국가 손해 얼마 해서 조목조목 따졌어요. 경제개발을 위해 더 많은 돈을 가져올 수도 있는데 졸속으로 협정을 맺은 건 쿠데타 이후 취약한 통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것밖에 안돼요. 개인의 피해에 대한 배상금을 왜 국가가 씁니까? 국가 차원의 배상금을 써야죠.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한나라당 내부에 충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야당으로서 미래를 제시하는 정당이라면 당이 3·5·6공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과거 정권의 모든 과오를 덮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따로 당을 만들어야죠. 지금 한나라당은 3·5·6공 뒤 여러 세력이 합당해서 생긴 통합정당입니다. 홍=관점에 따라 다르겠죠. 박근혜 대표나 지역적 지지기반 등을 살펴보면 경제 성장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종잣돈으로 보는 시각이 한나라당 정체성과 맞는 겁니다. 주류를 이루고 있는 그런 분들이 따로 당을 만들 게 아니라 이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떠나야 하지 않나요? 이=‘전통이 이거고 죽으나 사나 그렇게 갈 거니까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면 네가 나가라’라고 할 수 있어요. 그건 당내 노선투쟁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노선투쟁하면 당을 분열시킨다고 난리에요. 내 당을 비판해서 좀 그렇지만 이 당은 독재정권 아래 여당 체질이 딱 맞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죠. 이렇게 해서는 우리가 나라를 맡겠다고 하기엔 도덕성이나 국민적 대표성이 부족한 거죠. 한나라당을 건전한 당으로 만들어야 역사적 발전에 기여하는 겁니다. 한나라당이 과거를 끌어안고 똬리를 틀고 있는 한 역사발전을 위한 올바른 국민적 이해를 가져오기 힘들어요. 홍=이 의원은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이기도 하신데요. 보안법 폐지를 당에서 강경하게 말해야 하지 않나요? 이=17대 국회 처음 열릴 때 제가 “보안법은 이미 사문화된 법이니 우리가 먼저 전면폐지, 대체입법을 주장하든지 최고로 양보해도 개정안을 내 정국을 끌고가자”고 했더니 그때는 의원들 대부분이 동조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현 지도부 들어서고 국가보안법의 국자도 못 고친다, 당의 운명을 건다, 이렇게 나가니까 당내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제 개인적으로야 전면폐지가 좋죠. 제가 보안법으로 5번 감옥 가서 10여년을 살았어요. 그러나 당이 정 못 받아들이면 백번 양보해서 대체입법이라든지 개정안을 내서라도 이 국면을 넘어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발전연에서 대체법안을 만들어 당내에서 관철시키게 된 겁니다. 홍=과거사법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원래는 과거사법을 회피하면 한나라당이 죄가 있어서 그런 것 같으니 행자위에서 먼저 협상하면 좋겠다는 게 당의 입장이었어요. 그래서 행자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간 협상안을 만들어 놨는데 마지막날 몇몇 강경파가 나서서 한나라당의 지도부를 겨냥한 법인듯이 여론을 오도하는 바람에 안 된 거죠. 언론개혁법은 문화관광상임위에서 여야간 타협했는데 마지막날 지도부가 뒤엎어서 간사가 사표 내니 마니 소란스러웠어요. 그건 협상안대로 통과시켰지만요. 홍=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하는 걸 보면 한나라당이 기득권자의 이익만 대변하고 있다는 게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제가 사립학교 교사 출신이고 교육위원회에서 사립학교 감사도 했어요. 잘 알죠. 한나라당의 기본적인 입장은 건강한 사학은 육성하고 비리사학은 처벌하자는 건데 비리사학을 옹호하는 걸로 비쳐지니까 더 개혁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립학교법 말만 나오면 ‘좌경화다, 사학을 지배하려 한다’라며 강경파가 몰고 나오고 지도부가 거기에 동조합니다. 우리 법안은 구체화시키지 않고 남이 내놓은 건 무조건 색깔을 칠해서 반대해서는 안 되죠. 정책과 법안 차이는 협상과 대화를 통해 합의점 찾아야지 여기에 진퇴를 걸고 투쟁할 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목숨 걸고 싸우니까 이 꼴 난 겁니다. 한나라당이 이 점에 대해선 반성해야 해요. 6·3동지회 회장이기도 한 이 의원은 한-일 협정 문제를 이야기할 때 강경했다. 거친 표현도 서슴없이 했다. 질문도 다 끝나기 전에 답을 시작할 만큼 할 말이 많았다.
홍=보수정당에서 흔히 벌어지는 양상이 있는데요. 개혁적이던 분들이 이를테면 열린우리당이나 정권에 동원되거나 참여한 뒤엔 그 전과 많이 달라집니다. 이라크에 파병하고 신자유주의가 노골적으로 힘을 발휘하는데도 거기에 몸담고 있죠. 그런데 이 의원님도 마찬가집니다. 사사건건 지도부, 주류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왜 한나라당에 몸 담고 계십니까?
이=(웃음) 재야운동 하니까 하도 잡아가서 정당 만들면 안 잡아가겠지, 하고 민중당 만들었죠. 14대 때 민중당으로 출마했는데 사람들이 다 진보정당 있어야 한다고 했으면서도 안 찍어줬어요. 정당법에 한 석도 당선을 못시키면 정당을 해체하도록 돼 있어서 해체했죠. 그런데 김영삼 정권 말기에 김 대통령이 직접 불러 당에 들어와 개혁을 추동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신한국당에 들어갔습니다. 신한국당이 한나라당이 돼서 지금까지 넘어온 거죠. 정치인이 한번 정당을 택했고 자기의 소신이나 철학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싸워서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려고 노력해야지 안 된다고 당을 옮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바로 만들려고 노력해보고 안되면 정치를 그만둬야죠. 또 보수에 기반을 둔 정당도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건강한 보수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거고요.
홍=과거를 털어내지 못하는 건 한나라당의 정체성 자체가 거기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 굴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한번 들어가서는 어떻게 쉽게 나올 수 있나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럼 민중당에선 왜 쉽게 떠나셨습니까?
이=민중당이 해체되고 난 뒤 김낙중 사건, 이선실 사건 등이 터져 당을 복원할 수 없게 됐죠. 때가 되면 이에 대한 의혹이나 의문점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사실 민중당의 핵심 지도부와 이 사건들은 아무런 구체적 연관이 없었어요. 동학사에 민중당원 40명이 모여 2박3일간 회의를 한 결론이 ‘민중당은 복원할 수 없다, 향후 정치적 운신에 대해서는 개인의 판단에 맞긴다’였습니다. 당시에 여당이나 야당이나 비슷해서 구분한다는 건 의미가 없었어요. 어디든 현실 정치로 진입하는 게 좋겠다는 게 그때 우리의 결론이었죠.
홍세화
“협정 주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당 잦은 마찰에도 왜 탈당하지 않나” 이재오
“17대까지 오면서 많이 달라져 탈당보다 내부개혁위해 싸우는게…” 홍=민중당의 이념적 지향은 열린우리당보다도 민주노동당에 가까울 수 있었던 게 아닙니까? 또 한나라당이 과연 건강한 보수로 바뀔 가능성이 있는 정당인지요? 당의 인적, 물적 토대가 왜곡된 현대사 위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보안법, 패권적 지역주의 이런 것을 계속 끌어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비관적인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과거사나 5·16 이후에 대해서도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있죠. 그 사람들과 싸워야겠죠. 그런데 이 당을 포기한다면 달리 건강한 보수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느냐는 회의도 있습니다. 17대까지 오면서 한나라당 구성원들이 많이 바뀌었으니까 건강한 보수정당으로 자리매김하도록 싸우는 게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홍=열린우리당이나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지향은 어떻게 보십니까? 이=개별 정책에선 성급하고 미숙하고 잘못 판단한 것도 있죠. 하지만 끊임없이 역사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점도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이 사회주의를 지향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홍=그럼 그런 이야기가 한나라당 안에서 나오면 꾸짖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이철우 의원 사건이나 보안법 문제 나올 때 당에서 할 소리는 했죠. 홍=그게 잘 안 들립니다. 목소리가 약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이=보도를 안 해주기 때문이겠죠. 혼자서 농성할 수도 없고…. 중요한 지점마다 저는 제 목소리를 냅니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노무현 정권에 대해 좌경화됐다는 시각을 대부분 가지고 있어요. 홍=그러니까 한나라당에서 제일 급한 게 공부 아닙니까? 이=한나라당 의원들도 공부 많이 하는데 공부를 잘못해서 그렇죠.(웃음) 공부를 제대로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요. 당은 구성원들의 총체적 의사로 이끌어져야 하는데 우리나라 정당은 몇몇 지도부에 의해 운영되죠. 문제는 당직을 맡은 사람들의 역사 인식이 어느 쪽으로 편향되어 있느냐 하는 겁니다. 이런 점을 보면 한나라당이 해결해야 할 게 많죠.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책을 취해 나가는 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은 보안법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을 지키는 상징성이 있고 이걸 없애면 나라의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보죠. 홍=한나라당은 나라의 정체성을 반공이나 안보로 보는 것 같은데 한국의 정체성은 분명히 민주공화국입니다. 그리고 분명 보안법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개념과는 충돌하는 법이지요. 보안법을 없애는 걸 국가정체성을 해친다고 보는 건 모순이죠. 이=제 개인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법이 아니라 정치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48년 건국 이후 역사적 잘못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바로잡아야겠죠.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식 주장엔 48년 이후 한국정부는 친일이나 친미나 일종의 민족의 자존을 해치는 것들로, 쿠데타 이후엔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걸로 이뤄져서 그 자체가 전부 부정되어야 한다는 시각이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잘못을 고치라는 건지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건지…. 차이가 많이 있죠. 홍=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이란 말엔 결국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반역사적인 성격에 대한 문제제기가 담겨 있는 겁니다. 이 의원은 남민전에 가담했던 자신의 과거를 지금은 부정하시는 겁니까? 민주화운동을 이끌고 개혁정당에 투신했던 이 의원이 왜 한나라당에 여태 몸을 담고 있는지 홍 기획위원은 끈질기게 물었다. 이 의원은 웃음을 섞어가며 한나라당을 바꾸는 구실에 대해 말하면서도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다’고 몸을 낮췄다. 이=나는 민주투쟁국민위원회(민투)라는 조직의 책임자였기 때문에 전선 쪽과는 좀 달랐습니다. 이 둘을 합쳐 남민전 사건이 만들어진 것이죠. 남민전은 ‘진보적 민주주의’, 민투는 ‘폭 넒은 민주주의 실현’을 중시했죠. 어쨌든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지하운동에 제가 참여할 때는 48년 건국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니었고 그 뒤 식민지적으로 종속되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측면이 강하지 않았나 합니다. 홍=국민 지지만 보더라도 한나라당은 영남 지역주의 위에 서 있고 민주노동당이 15% 정도 차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의원은 민주화 운동에 투신해 민중당 사무총장까지 하셨죠. 그런데 진보에 방향이 있다고 할 때 분명히 지금은 역방향에 서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이=한나라당이 역사발전의 궤와 같이 하고 있지 않다면 제가 역방향에 서 있는 건 사실이죠. 하지만 한국 역사발전에서 한나라당 같은 정치 세력을 역사의 역방향으로 두기보다는 순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당에 있어야 해요. 개인의 변명이나 합리화일 수도 있고 자기 위안일 수도 있습니다. ‘궤변이다, 모순이다’라는 지적도 달게 받겠습니다. 사실 한나라당 원내대표, 사무총장, 비상대책위원장, 정책위특별위원장을 재선 때 다 했습니다. 3선이 되고 나서 ‘지금부터는 한나라당이 역사발전의 궤와 같이 하도록 내 17대 전부를 바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당 연찬회 때도 제가 왜 과거를 털고 가야 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이야기했던 겁니다. 홍=건전한 진보 세력과 합리적 보수 세력이 상대를 존중하면서 경쟁하는 시스템으로 가는 게 서유럽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의 수구적인 성격이 없어져야 합리적 보수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죠. 저는 이에 대해 비관적입니다. 아무리 이 의원이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그렇다면 몸을 거기서 빼는 것이 역사를 위해서 올바른 길이죠. 솔직히 속도야 어떨지 모르지만 한나라당은 약화되는 과정이고 그만큼 진보세력이 힘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열린우리당이 오히려 합리적 보수로 자리잡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세력이 점점 커지면서 경쟁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해요.
이=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나가서 무소속이나 민주노동당, 열린우리당으로 갔을 때 한나라당에서 하는 구실만큼 할 수 있을까요? 거기는 제가 아니라도 그런 구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죠. 한나라당엔 드물어요. 홍=그런데 한나라당에서 출당 이야기가 나오는 거 아닙니까? 이=(웃음) 그건 만날 나오는 이야기죠. 그러니까 한나라당이 극우적이거나 수구적인 것을 완화하고 합리적 보수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더 많아야합니다. 홍=박근혜 대표가 어떤 방식으로 박정희를 뛰어넘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가능성은 있을까요? 이=지난해에 그 이야기했다가 이제까지 여진이 남아 있습니다. ‘당 나가라, 첩자냐’ 온갖 소리를 다 들었죠.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니 개의치 않습니다. 박근혜 대표는 자기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 아버지의 좋은 업적이든 좋지않은 업적이든 그 그늘에 안주하거나 연장선에서 정치를 보면 안돼요. 한나라당의 뿌리가 3·5·6공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 박 대표 자신이나 한나라당에도 미래가 없습니다. 저는 박 대표 개인의 가능성보다 한나라당의 잠재력에 무게를 둡니다. 두 번 대선에서 패배했고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받을 만큼 받았어요. 충격에서 깨어나는 시기가 왔고 그래도 건전한 국회의원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홍/ ‘진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 진보의 역방향에 있지 않은가
이/ 박 대표보다 한나라 잠재력 믿어 문서공개 당내노선투쟁 촉발할 듯 홍=이번 한-일 협정 문서 공개가 한나라당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이=당내 노선투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겁니다. 홍=서울시장에 출마할 계획이 있나요? 이=저는 한번도 그런 말 한 적이 없는데 언론에서는 아주 기정사실처럼 보고 있죠. 제가 이명박 서울시장의 선거대책본부장과 서울시장직무인수위원장을 했기 때문이죠. 또 한나라당 안에서 이미 대표 빼고 당직을 다 했으니까요. 서울시장 출마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어느 자리에서 정치를 하는 게 제 정치적 가치관에 맞는지는 생각해 보겠습니다. 홍=이명박 시장의 행정 하는 모습을 보면 개발주의, 불도저식으로 국민에게 박정희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충돌하진 않으시나요? 이=이 시장과는 6·3 학생운동 때부터 알죠. 박정희식이라기보다는 현대에서 건설과 경영을 주로 맡았기 때문에 산업화에 대한 인식이 있어요. 사실 상당히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역사관이나 시대를 보는 시각 등에선 충돌할 부분은 많이 있지만 그건 토론으로 해결해 가는 거죠. 홍=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해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한 건 사실 아닙니까?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시나요? 이=지금 광역자치단체는 인구가 너무 많고 면적이 커요. 반면에 기초자치단체는 너무 작고 인구도 적죠. 현재 인구 2만~3만 자치시에 중앙정부의 기능이 다 있어요. 공무원 수가 더 많다고 할 정도죠. 얼마나 낭비입니까? 그래서 전국을 인구 100만 내외기준으로 40~50개 광역단체로 나눠 교육, 재정, 치안, 인사 등에 대해 분권을 주자는 겁니다. 서울도 4대문 안만 서울특별시로 하고 서울강서시, 서울강남시, 서울강동시 등 4개 권역으로 분산합니다. 지방균형발전이 안 되는 건 모든 걸 중앙정부가 틀어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홍=수도권 문제의 해법이 될지 감이 잘 안 옵니다. 이=수도권을 발전시키는 게 국제적 흐름입니다. 도시에 있는 인구를 시골로 쫓아 보내야 시골이 잘되는 건 아니죠. 홍=궁극적으로 삶의 질 문젭니다. 집중으로 삶의 질이 황폐해지죠. 지금 말씀하신 건 농촌에서 도시로 서울로 흘러들어가는 블랙홀 현상을 막을 수 있는 걸로 보이지 않습니다. 분권이 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경제, 교육, 일자리 모든 부분이 서울에 집중돼 있으니까요. 또 수도를 옮기는 정도가 아니라 주 정부 같은 걸 세우는 건데 더 어렵지 않을까요? 이=교육, 일자리 같은 것들도 광역화된 지역별로 나눠서 집중하면 되겠죠. 국세랑, 지방세 비율 조정 등으로 재원 마련은 얼마든지 길이 있습니다. 통일을 대비해서도 이런 방향이 좋다고 생각해요. 이밖에 17대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은 휴전선 일대에 남북의 통치권력이 미치지 않는 통일시, 공동체를 만들어 이를 배경으로 남북이 함께 영화도 만들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정치를 탈권위화하는 건 문화예술적 접근밖에 없죠. 홍=그 계획을 실행하려면 북한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겠어요. 또 이를 위해 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보안법은 어차피 사문화된 것 아니겠습니까. 한나라당의 시각에서 보면 제가 오늘 상당히 파격적으로 말했네요.(웃음) 정리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적잖은 한나라 지지세력 경제성장 종잣돈 불가피 시각” 이재오 “통치 취약기반 강화목적일 뿐 근대화 이유라면 더 받았어야” 이재오 의원과 홍세화 기획위원은 만난 적은 없지만 인연이 있다. ‘반외세 민족주의, 반독재 민주주의’를 내걸고 학생운동 세력 등이 모인 남조선민족해방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으로 이 의원은 5년형을 선고 받았다. 홍 위원도 같은 사건으로 프랑스로 망명해 20여년 동안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 의원은 “몇 년이나 프랑스에 있었나”라고 물으며 갑자기 “여러가지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해를 거슬러 올라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한 뒤 홍 위원이 질문으로 대담을 시작했다. 홍세화=최근 한-일 협정 문서 일부가 공개됐습니다. 한국정부가 청구권을 거의 포기하고 경제협력자금을 받았더군요.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재오=이 협정에선 을사조약, 병합조약 등 한-일 사이에 있었던 조약들을 ‘이미 무료로 한다’라고 애매하게 처리했어요. 조약의 체결 시점부터 무효라고 해야 일본 통치가 불법이니까 청구권이나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데 말이죠. ‘이미 무효’라는 건 체결 당시엔 합법이라는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 거죠. 일본과 다시 협상해 이 부분을 분명히하고 사죄도 받고, 개인배상, 국가배상 문제도 풀어야죠. 또 한-일 관계에서 한국을 유일한 합법정부로 한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 당시 남북을 통털어 남한 정부가 대표하도록 해석한 것은 한국과 일본정부가 바로잡아야 합니다. 북한이 일본과 협상할 길은 열려있고 이를 방해해서는 안 되죠. 말씀하신대로 우리 정부가 서둘러 개인배상을 막아버렸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30억달러까지 요구했는데 군사정부는 3억6천만달러로 양보했어요. 게다가 일부 피해자에게만 당시 30만원씩 주고 나머지는 경제개발에 썼다는데 그렇게 쓸 돈이 아니죠. 당시엔 징용자, 강제노무자, 위안부 등의 명단을 우리 정부가 갖고 있지 못해 졸속으로 협상했습니다. 그 뒤 일본이 이런 문건을 보내줬는데도 우리가 공개를 안 한 겁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도 한-일관계 대책에 소홀했던 거죠. 한국정부는 피해자 명단을 공개하고 본인들에게 통보해야 해요. 또 중요한 건 추후 문건 공개입니다. 일본에도 요구해야죠. 미국 중앙정보국(CIA) 특별문건을 보면 일본기업들이 6600만달러를 군사정권의 실세에 정치자금으로 줬다는 거 아닙니까? 그 실체를 밝혀야죠. 한-일 협상 관계자는 참회하고 진상을 다 공개해야 합니다. 야당은 정치적 의도를 내세워서 한-일협정의 진상, 그 굴욕적이고 졸속인 진상을 은폐하거나 비껴가려고 해서는 안돼요. 홍/ 4년 강점당한 필리핀 청구액은 5억 5천만 달러인데 우리는…
이/ 이승만 정부는 30억달러 요구 다시 협상해서 사죄 받아야… 홍=필리핀이 일제에 4년간 강점당한데 대한 청구권으로 받은 금액이 5억5천만달러 정도랍니다. 우리는 3억6천만달러 청구했는데 그만큼 아주 졸속으로 굴욕적으로 협상한 것이죠. 결국 일제 부역했던 세력, 또는 거기에 뿌리를 둔 세력이 강점기에 희생당한 동족의 피해 배상금을 통치자금으로 쓰는 참 기막힌 이야기가 되죠. 이=그렇게 정리할 수도 있겠죠. 건국 뒤에 정부에서 친일한 사람들을 등용해서 썼잖습니까? 5·16 쿠데타 뒤에도 마찬가지고요. 일본군 출신이 정부 요소에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을 1년만 겪은 버마도 국가적 배상을 받았는데 우리는 정말 말도 안 되게 했어요. 국회에서 진상조사특위를 만들어 굴욕적인 처리의 정치적 의도는 뭐였는지, 협상 주체들에 대해 조사해야 합니다. 더욱 용서할 수 없는 건 국민과 학생들의 올바른 지적을 총칼로 막았다는 거죠. 비상계엄령 선포하고 학교에서 제적시키고 내란음모까지 덧씌워 잡아갔습니다. 그렇게 강압적으로 국민의 반대를 무마하고 한 일이 고작 나라 자존심을 팔아먹었던 겁니다. 홍=야당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충돌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성격이 바로 박정희 쿠데타 세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죠. 또 적지 않은 한나라당 지지 세력은 개인배상금을 경제성장의 종자돈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어불성설이죠. 변명이고 회피입니다. 그 논리대로 산업근대화를 위해서라면 돈을 더 받았어야죠. 쿠데타 정권 이전 정부만 해도 개인 손해 얼마, 국가 손해 얼마 해서 조목조목 따졌어요. 경제개발을 위해 더 많은 돈을 가져올 수도 있는데 졸속으로 협정을 맺은 건 쿠데타 이후 취약한 통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것밖에 안돼요. 개인의 피해에 대한 배상금을 왜 국가가 씁니까? 국가 차원의 배상금을 써야죠.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한나라당 내부에 충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야당으로서 미래를 제시하는 정당이라면 당이 3·5·6공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과거 정권의 모든 과오를 덮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따로 당을 만들어야죠. 지금 한나라당은 3·5·6공 뒤 여러 세력이 합당해서 생긴 통합정당입니다. 홍=관점에 따라 다르겠죠. 박근혜 대표나 지역적 지지기반 등을 살펴보면 경제 성장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종잣돈으로 보는 시각이 한나라당 정체성과 맞는 겁니다. 주류를 이루고 있는 그런 분들이 따로 당을 만들 게 아니라 이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떠나야 하지 않나요? 이=‘전통이 이거고 죽으나 사나 그렇게 갈 거니까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면 네가 나가라’라고 할 수 있어요. 그건 당내 노선투쟁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노선투쟁하면 당을 분열시킨다고 난리에요. 내 당을 비판해서 좀 그렇지만 이 당은 독재정권 아래 여당 체질이 딱 맞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죠. 이렇게 해서는 우리가 나라를 맡겠다고 하기엔 도덕성이나 국민적 대표성이 부족한 거죠. 한나라당을 건전한 당으로 만들어야 역사적 발전에 기여하는 겁니다. 한나라당이 과거를 끌어안고 똬리를 틀고 있는 한 역사발전을 위한 올바른 국민적 이해를 가져오기 힘들어요. 홍=이 의원은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이기도 하신데요. 보안법 폐지를 당에서 강경하게 말해야 하지 않나요? 이=17대 국회 처음 열릴 때 제가 “보안법은 이미 사문화된 법이니 우리가 먼저 전면폐지, 대체입법을 주장하든지 최고로 양보해도 개정안을 내 정국을 끌고가자”고 했더니 그때는 의원들 대부분이 동조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현 지도부 들어서고 국가보안법의 국자도 못 고친다, 당의 운명을 건다, 이렇게 나가니까 당내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제 개인적으로야 전면폐지가 좋죠. 제가 보안법으로 5번 감옥 가서 10여년을 살았어요. 그러나 당이 정 못 받아들이면 백번 양보해서 대체입법이라든지 개정안을 내서라도 이 국면을 넘어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발전연에서 대체법안을 만들어 당내에서 관철시키게 된 겁니다. 홍=과거사법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원래는 과거사법을 회피하면 한나라당이 죄가 있어서 그런 것 같으니 행자위에서 먼저 협상하면 좋겠다는 게 당의 입장이었어요. 그래서 행자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간 협상안을 만들어 놨는데 마지막날 몇몇 강경파가 나서서 한나라당의 지도부를 겨냥한 법인듯이 여론을 오도하는 바람에 안 된 거죠. 언론개혁법은 문화관광상임위에서 여야간 타협했는데 마지막날 지도부가 뒤엎어서 간사가 사표 내니 마니 소란스러웠어요. 그건 협상안대로 통과시켰지만요. 홍=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하는 걸 보면 한나라당이 기득권자의 이익만 대변하고 있다는 게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제가 사립학교 교사 출신이고 교육위원회에서 사립학교 감사도 했어요. 잘 알죠. 한나라당의 기본적인 입장은 건강한 사학은 육성하고 비리사학은 처벌하자는 건데 비리사학을 옹호하는 걸로 비쳐지니까 더 개혁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립학교법 말만 나오면 ‘좌경화다, 사학을 지배하려 한다’라며 강경파가 몰고 나오고 지도부가 거기에 동조합니다. 우리 법안은 구체화시키지 않고 남이 내놓은 건 무조건 색깔을 칠해서 반대해서는 안 되죠. 정책과 법안 차이는 협상과 대화를 통해 합의점 찾아야지 여기에 진퇴를 걸고 투쟁할 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목숨 걸고 싸우니까 이 꼴 난 겁니다. 한나라당이 이 점에 대해선 반성해야 해요. 6·3동지회 회장이기도 한 이 의원은 한-일 협정 문제를 이야기할 때 강경했다. 거친 표현도 서슴없이 했다. 질문도 다 끝나기 전에 답을 시작할 만큼 할 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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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정 주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당 잦은 마찰에도 왜 탈당하지 않나” 이재오
“17대까지 오면서 많이 달라져 탈당보다 내부개혁위해 싸우는게…” 홍=민중당의 이념적 지향은 열린우리당보다도 민주노동당에 가까울 수 있었던 게 아닙니까? 또 한나라당이 과연 건강한 보수로 바뀔 가능성이 있는 정당인지요? 당의 인적, 물적 토대가 왜곡된 현대사 위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보안법, 패권적 지역주의 이런 것을 계속 끌어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비관적인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과거사나 5·16 이후에 대해서도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있죠. 그 사람들과 싸워야겠죠. 그런데 이 당을 포기한다면 달리 건강한 보수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느냐는 회의도 있습니다. 17대까지 오면서 한나라당 구성원들이 많이 바뀌었으니까 건강한 보수정당으로 자리매김하도록 싸우는 게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홍=열린우리당이나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지향은 어떻게 보십니까? 이=개별 정책에선 성급하고 미숙하고 잘못 판단한 것도 있죠. 하지만 끊임없이 역사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점도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이 사회주의를 지향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홍=그럼 그런 이야기가 한나라당 안에서 나오면 꾸짖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이철우 의원 사건이나 보안법 문제 나올 때 당에서 할 소리는 했죠. 홍=그게 잘 안 들립니다. 목소리가 약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이=보도를 안 해주기 때문이겠죠. 혼자서 농성할 수도 없고…. 중요한 지점마다 저는 제 목소리를 냅니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노무현 정권에 대해 좌경화됐다는 시각을 대부분 가지고 있어요. 홍=그러니까 한나라당에서 제일 급한 게 공부 아닙니까? 이=한나라당 의원들도 공부 많이 하는데 공부를 잘못해서 그렇죠.(웃음) 공부를 제대로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요. 당은 구성원들의 총체적 의사로 이끌어져야 하는데 우리나라 정당은 몇몇 지도부에 의해 운영되죠. 문제는 당직을 맡은 사람들의 역사 인식이 어느 쪽으로 편향되어 있느냐 하는 겁니다. 이런 점을 보면 한나라당이 해결해야 할 게 많죠.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책을 취해 나가는 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은 보안법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을 지키는 상징성이 있고 이걸 없애면 나라의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보죠. 홍=한나라당은 나라의 정체성을 반공이나 안보로 보는 것 같은데 한국의 정체성은 분명히 민주공화국입니다. 그리고 분명 보안법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개념과는 충돌하는 법이지요. 보안법을 없애는 걸 국가정체성을 해친다고 보는 건 모순이죠. 이=제 개인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법이 아니라 정치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48년 건국 이후 역사적 잘못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바로잡아야겠죠.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식 주장엔 48년 이후 한국정부는 친일이나 친미나 일종의 민족의 자존을 해치는 것들로, 쿠데타 이후엔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걸로 이뤄져서 그 자체가 전부 부정되어야 한다는 시각이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잘못을 고치라는 건지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건지…. 차이가 많이 있죠. 홍=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이란 말엔 결국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반역사적인 성격에 대한 문제제기가 담겨 있는 겁니다. 이 의원은 남민전에 가담했던 자신의 과거를 지금은 부정하시는 겁니까? 민주화운동을 이끌고 개혁정당에 투신했던 이 의원이 왜 한나라당에 여태 몸을 담고 있는지 홍 기획위원은 끈질기게 물었다. 이 의원은 웃음을 섞어가며 한나라당을 바꾸는 구실에 대해 말하면서도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다’고 몸을 낮췄다. 이=나는 민주투쟁국민위원회(민투)라는 조직의 책임자였기 때문에 전선 쪽과는 좀 달랐습니다. 이 둘을 합쳐 남민전 사건이 만들어진 것이죠. 남민전은 ‘진보적 민주주의’, 민투는 ‘폭 넒은 민주주의 실현’을 중시했죠. 어쨌든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지하운동에 제가 참여할 때는 48년 건국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니었고 그 뒤 식민지적으로 종속되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측면이 강하지 않았나 합니다. 홍=국민 지지만 보더라도 한나라당은 영남 지역주의 위에 서 있고 민주노동당이 15% 정도 차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의원은 민주화 운동에 투신해 민중당 사무총장까지 하셨죠. 그런데 진보에 방향이 있다고 할 때 분명히 지금은 역방향에 서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이=한나라당이 역사발전의 궤와 같이 하고 있지 않다면 제가 역방향에 서 있는 건 사실이죠. 하지만 한국 역사발전에서 한나라당 같은 정치 세력을 역사의 역방향으로 두기보다는 순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당에 있어야 해요. 개인의 변명이나 합리화일 수도 있고 자기 위안일 수도 있습니다. ‘궤변이다, 모순이다’라는 지적도 달게 받겠습니다. 사실 한나라당 원내대표, 사무총장, 비상대책위원장, 정책위특별위원장을 재선 때 다 했습니다. 3선이 되고 나서 ‘지금부터는 한나라당이 역사발전의 궤와 같이 하도록 내 17대 전부를 바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당 연찬회 때도 제가 왜 과거를 털고 가야 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이야기했던 겁니다. 홍=건전한 진보 세력과 합리적 보수 세력이 상대를 존중하면서 경쟁하는 시스템으로 가는 게 서유럽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의 수구적인 성격이 없어져야 합리적 보수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죠. 저는 이에 대해 비관적입니다. 아무리 이 의원이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그렇다면 몸을 거기서 빼는 것이 역사를 위해서 올바른 길이죠. 솔직히 속도야 어떨지 모르지만 한나라당은 약화되는 과정이고 그만큼 진보세력이 힘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열린우리당이 오히려 합리적 보수로 자리잡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세력이 점점 커지면서 경쟁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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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나가서 무소속이나 민주노동당, 열린우리당으로 갔을 때 한나라당에서 하는 구실만큼 할 수 있을까요? 거기는 제가 아니라도 그런 구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죠. 한나라당엔 드물어요. 홍=그런데 한나라당에서 출당 이야기가 나오는 거 아닙니까? 이=(웃음) 그건 만날 나오는 이야기죠. 그러니까 한나라당이 극우적이거나 수구적인 것을 완화하고 합리적 보수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더 많아야합니다. 홍=박근혜 대표가 어떤 방식으로 박정희를 뛰어넘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가능성은 있을까요? 이=지난해에 그 이야기했다가 이제까지 여진이 남아 있습니다. ‘당 나가라, 첩자냐’ 온갖 소리를 다 들었죠.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니 개의치 않습니다. 박근혜 대표는 자기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 아버지의 좋은 업적이든 좋지않은 업적이든 그 그늘에 안주하거나 연장선에서 정치를 보면 안돼요. 한나라당의 뿌리가 3·5·6공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 박 대표 자신이나 한나라당에도 미래가 없습니다. 저는 박 대표 개인의 가능성보다 한나라당의 잠재력에 무게를 둡니다. 두 번 대선에서 패배했고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받을 만큼 받았어요. 충격에서 깨어나는 시기가 왔고 그래도 건전한 국회의원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홍/ ‘진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 진보의 역방향에 있지 않은가
이/ 박 대표보다 한나라 잠재력 믿어 문서공개 당내노선투쟁 촉발할 듯 홍=이번 한-일 협정 문서 공개가 한나라당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이=당내 노선투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겁니다. 홍=서울시장에 출마할 계획이 있나요? 이=저는 한번도 그런 말 한 적이 없는데 언론에서는 아주 기정사실처럼 보고 있죠. 제가 이명박 서울시장의 선거대책본부장과 서울시장직무인수위원장을 했기 때문이죠. 또 한나라당 안에서 이미 대표 빼고 당직을 다 했으니까요. 서울시장 출마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어느 자리에서 정치를 하는 게 제 정치적 가치관에 맞는지는 생각해 보겠습니다. 홍=이명박 시장의 행정 하는 모습을 보면 개발주의, 불도저식으로 국민에게 박정희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충돌하진 않으시나요? 이=이 시장과는 6·3 학생운동 때부터 알죠. 박정희식이라기보다는 현대에서 건설과 경영을 주로 맡았기 때문에 산업화에 대한 인식이 있어요. 사실 상당히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역사관이나 시대를 보는 시각 등에선 충돌할 부분은 많이 있지만 그건 토론으로 해결해 가는 거죠. 홍=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해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한 건 사실 아닙니까?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시나요? 이=지금 광역자치단체는 인구가 너무 많고 면적이 커요. 반면에 기초자치단체는 너무 작고 인구도 적죠. 현재 인구 2만~3만 자치시에 중앙정부의 기능이 다 있어요. 공무원 수가 더 많다고 할 정도죠. 얼마나 낭비입니까? 그래서 전국을 인구 100만 내외기준으로 40~50개 광역단체로 나눠 교육, 재정, 치안, 인사 등에 대해 분권을 주자는 겁니다. 서울도 4대문 안만 서울특별시로 하고 서울강서시, 서울강남시, 서울강동시 등 4개 권역으로 분산합니다. 지방균형발전이 안 되는 건 모든 걸 중앙정부가 틀어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홍=수도권 문제의 해법이 될지 감이 잘 안 옵니다. 이=수도권을 발전시키는 게 국제적 흐름입니다. 도시에 있는 인구를 시골로 쫓아 보내야 시골이 잘되는 건 아니죠. 홍=궁극적으로 삶의 질 문젭니다. 집중으로 삶의 질이 황폐해지죠. 지금 말씀하신 건 농촌에서 도시로 서울로 흘러들어가는 블랙홀 현상을 막을 수 있는 걸로 보이지 않습니다. 분권이 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경제, 교육, 일자리 모든 부분이 서울에 집중돼 있으니까요. 또 수도를 옮기는 정도가 아니라 주 정부 같은 걸 세우는 건데 더 어렵지 않을까요? 이=교육, 일자리 같은 것들도 광역화된 지역별로 나눠서 집중하면 되겠죠. 국세랑, 지방세 비율 조정 등으로 재원 마련은 얼마든지 길이 있습니다. 통일을 대비해서도 이런 방향이 좋다고 생각해요. 이밖에 17대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은 휴전선 일대에 남북의 통치권력이 미치지 않는 통일시, 공동체를 만들어 이를 배경으로 남북이 함께 영화도 만들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정치를 탈권위화하는 건 문화예술적 접근밖에 없죠. 홍=그 계획을 실행하려면 북한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겠어요. 또 이를 위해 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보안법은 어차피 사문화된 것 아니겠습니까. 한나라당의 시각에서 보면 제가 오늘 상당히 파격적으로 말했네요.(웃음) 정리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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