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6일 총지출 357조7000억원으로 올해보다 4.6% 늘어난 새해 예산안을 발표했다. 복지와 경제활성화에 재원을 우선적으로 배분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의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새해 예산안은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 복지 확대 등 핵심 공약이 대폭 축소됐다는 게 그 하나다. 둘째로 국가채무가 늘어나고 세입 추계 또한 비현실적이어서 재정건전성이 급격히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국회는 세입과 세출 양면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새해 보건복지 예산은 106조원으로 올해보다 8.7% 늘었으며 처음으로 100조원대에 진입했다고 한다. 하지만 복지예산 증가액의 절반 이상이 공적연금 등 경직성 예산이며, 피부에 와닿는 복지예산은 공약가계부에 비해 많이 축소됐다.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무상보육 등 국민에게 약속한 핵심 공약 이행을 위한 예산도 태부족한 상태다.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은 1000억원만 추가로 잡은 데서 알 수 있다. 고교 무상교육, 반값등록금,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등 여러 복지공약도 생색내기 예산편성에 그쳤다. 지방재정 지원대책도 미흡해 이대로 가면 일선에서 재원 문제를 둘러싸고 상당한 혼란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세출 구조조정을 하겠다던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23조원에 이른다. 4대강 사업을 벌인 이명박 정부 5년의 연평균 금액 수준으로 달라진 게 없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입김을 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자유치 건설 보조금을 1조원 이상 책정한 걸 보면 그러한 속내가 드러난다.
국세 세입예산을 올해보다 8조원 늘어난 218조원으로 책정했는데 뜯어보면 분식에 가깝다. 올해 세입예산은 210조원으로 잡았지만 연말까지 세수결손이 8조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런데 내년 세입예산은 실적이 아니라 올해 예산안을 토대로 잡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16조원 이상의 세수가 필요하다. 정부의 낙관적 전망대로 경제성장률이 3.9%에 이른다고 해도 절반밖에 만들어낼 수 없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5조500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것도 현실성이 의문시된다.
나랏빚은 급속도로 늘게 됐다. 새해 예산안에서 국가채무는 35조원가량 늘어 박근혜 정부 2년 사이에 70조원의 빚이 쌓이게 됐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빠른 속도다. 복지 공약을 이행하는 시늉만 내면서 부담은 미루거나 뒤로 돌린 결과다. 이런 식의 짜맞추기 장부로 나라살림을 운용할 수 없다. 증세 없는 복지의 허구와 한계가 드러난 만큼 새로 물꼬를 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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