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할 경우 발생하는 국민연금 가입자 손해 문제를, 보건복지부가 지난 8월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이 공개됐다. 복지부는 특히 국민연금을 오래 가입한 저소득층이 더 불리해질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가입기간 10년 미만의 지역가입자들은 보험료 납부를 중단하고 기초연금 20만원을 받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까지 지적했다.
나라에서 권장하는 제도를 믿고 따랐던 국민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고, 정부 스스로 이를 인정하는 내용이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퇴한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 것이기도 하다. 진 전 장관은 사퇴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연금 가입자 100만명이 탈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예견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국민연금 연계안을 밀어붙인 가장 큰 이유는 재정 문제 때문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안대로 기초연금을 소득·재산과 연계할 경우 향후 노인인구가 급증하면 국가의 부담도 늘게 된다. 하지만 국민연금과 연계하면 국민연금 가입률이 높은 청년층이 노년층이 될 때 국가의 부담은 줄어든다. 이는 정치적으로도 효과적일 수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적고 가입기간이 짧은 지금의 노인들은 대부분 기초연금을 20만원씩 받을 수 있어 아무런 불만이 없고, 기초연금이 줄어드는 청장년층에게는 그 불리함이 먼 미래의 일이므로 반발이 적을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지급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과 비교하면 명백한 기만이다. 기초연금 내용에 복잡한 계산방식을 도입해 국민의 몫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건은 기초연금 안이 내용뿐만 아니라 절차 면에서도 큰 결함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냈다. 기초연금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가 분명하게 국민연금 연계안의 부당함을 보고했는데도, 청와대는 가볍게 무시하고 말았다. 이럴 거면 왜 그 많은 부처를 두고 장관을 앉히는지 모르겠다. 청와대의 수석비서관들만 있으면 되지 않겠는가. 주무부처 장관의 반대를 청와대 참모가 무력화시킨 것은, 아무리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 해도 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약속했던 ‘책임장관제’의 취지에서도 완전히 벗어난 일이다. 박 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장관들이 말씀을 받아적기에 급급한 국무회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 문건으로 청와대가 복지부의 전문적인 검토 의견을 묵살한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 만큼, 국회는 문제투성이인 기초연금 제도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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