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국가정보원 및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비보도를 전제로 기자들에게 한 말이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 중요한 발언 내용을 간추려 보면 이렇다. “국가기관에도 민주당 지지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박근혜 지지자들만 트위터 쓰고 댓글 쓰는가” “지나간 이야기가 다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개입돼 있는지는 우리가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고 요청한 적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대변하는 이 수석의 이런 말에서 확인된 청와대의 시국인식은 매우 우려스럽다.
우선 상황을 정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엉뚱하게 ‘민주당 지지 공직자’ 이야기를 꺼낸 것부터 그렇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 등이 대선에 개입함으로써 빚어진 국기문란과 민주주의 훼손 행위다. 국정원 직원들의 대규모 트위터 활동 등 조직적 차원의 대선 개입 혐의는 날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이들의 대선 개입을 어떻게든 ‘개인적 일탈 행위’로 몰아가고 싶겠지만 그러려면 좀 더 그럴듯한 근거를 내놓아야 한다. ‘다른 공직자’ 운운하는 것은 최소한의 논리 구조도 갖추지 못한 유치한 궤변이다.
이 수석이 “수사 결과가 나왔느냐, 재판 결과가 나왔느냐”고 되풀이해 물은 것 역시 진실을 회피하는 자세다. 지금 상황은 국정원 직원 등의 대선 개입을 떠나 진실 규명을 방해하는 외부 압력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검찰 수뇌부가 수사팀에 압력을 가한 정황도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청와대가 있으리라는 것이 국민의 일반적 관측이다. 청와대는 지금 수사 결과 타령을 하기에 앞서 수사팀이 소신껏 수사를 하고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일이 급선무다.
청와대의 최대 걱정거리는 정권의 정통성 훼손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식의 덫에 갇혀 있을수록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 뿐이다. 여권 내부에서도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대응 방식이 잘못됐다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당사자’인 청와대가 워낙 강경하다 보니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강경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국가기관들의 대선 개입은 이제 미국과 일본 등 다른 나라 언론들이 대서특필을 할 정도로 국제적 망신거리로 떠올랐다. 청와대가 ‘별게 아니다’는 말만 되풀이해서는 상황이 더욱 악화할 뿐이다. 난마처럼 꼬인 사태를 해결하는 길은 한 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철저한 진상 규명과 국기문란 행위의 재발을 막기 위한 혁신적 개혁 의지를 천명하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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