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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지워야 할 부끄러운 흔적들

등록 2005-01-24 20:40수정 2005-01-24 20:40

“짐은 곧 국가다!” 식의 행태는 중세 전제군주 때만이 아니라 우리 세대에서도 자행돼 왔음이 여러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것들은 많은 사람이 ‘크고 거룩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귀중한 유적이나 거대한 기념물에 확고부동한 글씨로 각인돼 시대정신을 비웃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광화문’ 현판 글씨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글씨로, 나라의 가슴이자 서울 한 복판, 나라 안팎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버티고 서서 중요 행사 때마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곤 한다. 조선 왕실의 정궁이자 나라의 상징물과도 같은 역사적 건물 자리에 독재자의 ‘강퍅한’ 글씨가 생생히 남아 힘을 발휘하고 있으니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이 어떠할까? 정궁의 전통 건물이었던 것을 시멘트로 개조한 것도 그렇지만 현판조차 박씨 스스로 ‘친필’을 휘두른 것에서는 무소불위의 독재권력을 후세에까지 과시하기 위한 속내가 보인다.

역사·문화 유적이나 대형 기념물에 박씨가 남긴 글씨는 당국이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많다고 한다. 가까운 사례로 행주대첩비와 행주산성 충렬사 편액, 파주 화석정 편액, 수원 화성 화령전 운한각 편액, 구파발 통일로 들머리 큰 돌에 새겨진 ‘통일로’라는 글씨 등이 모두 박씨가 쓴 것들이다. 각종 역사·문화 유적은 물론, 현충탑이나 고속도로 건설 기념비 등에는 박씨에 이어 전두환, 노태우씨 등 역대 군부 독재자들의 글씨도 많이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이 광화문 현판을 올 8·15 광복절 때 바꾸어 달 것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문화재청장이나 주변 몇 사람만의 생각으로 광화문 현판 하나만을 단발성으로 바꿔 달 일이 아니다.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전담 모임체를 두고 기준과 원칙을 세워 역사의 수치인 이런 글씨들을 지워내야 한다. 역사·문화 유적과 기념물은 겨레의 자산이자 대대로 전할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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