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24일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에게 친서를 보냈다. 개성공단을 방문한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을 통해서다. 김 제1비서가 남쪽 인사에게 친서를 보낸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희호 이사장에게 보낸 친서 내용을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3주기에 조화를 보내준 데 대한 감사와 안부 인사가 주로 담겨 있다. “민족통일 숙원을 이룩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는 대목도 다분히 의례적인 표현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이번 친서 전달은 눈여겨볼 만하며, 민간 차원의 일이라고 정부가 가볍게 넘겨선 안 된다. 친서 내용보다 친서 전달 과정에서 보여준 북한 태도를 주목해야 한다.
우선, 지난 16일 이희호 이사장의 조화를 건네받을 때 북쪽의 원동연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고맙다는 인사를 했는데도 굳이 김정은 제1비서 명의의 친서를 보내면서 재차 감사 표시를 한 점이 이례적이다. 24일 개성공단에서 친서를 전달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비서는 우리 정부에 대한 비난을 자제했다고 한다. “내년에 남북관계가 정말 좋아지길 바라고 있다. 금강산 관광, 5·24 조치, 이산가족 상봉 등 문제에서 소로를 대통로로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은 “지난 16일 원동연 부위원장은 ‘연말에 돌출상황이 오지 않도록 남북이 잘 관리하자’고 했다. 두 차례 만남에서 북한이 내년에 남북관계 개선을 바란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북한이 과거 인연이 있는 김대중평화센터를 통해 에둘러 우리 정부에 대화의 손짓을 한 게 아닌가 추측해볼 수 있다. 정부는 북한 태도를 ‘전형적인 정부-민간 분리 술책’이라고 치부할 게 아니라, 전향적으로 해석해서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로 삼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 <인터뷰>를 둘러싸고 북-미 대립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한 우리 정부의 역할은 더욱 커진 터다.
북한을 상대하는 일에 정부와 민간을 나누는 게 무의미하다는 건 과거 정부의 선례에서 이미 입증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 대박’을 말하고 이희호 이사장을 청와대로 불러 협조를 요청한 것도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김정은 친서’라는 작은 불씨를 살려 나갈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슈김정은의 북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