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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재벌 황제경영에 일침 가한 ‘땅콩 회항’ 판결

등록 2015-02-12 18:35

‘땅콩 회항’ 사건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기업 총수의 자녀라는 후광으로 직원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공적인 운송수단인 항공기마저 자기 물건 다루듯이 한 재벌 3세의 오만한 행동에 사법적 단죄가 이뤄진 것이다. 조현아씨의 행위가 도덕적 지탄의 대상을 넘어 중대한 범죄였음을 확인해주는 판결이다.

재판의 가장 큰 쟁점이었던 항로 변경 및 안전운항 저해 혐의와 관련해, 재판부는 “(조 전 부사장의 행위로) 다른 항공기 운항을 방해했으며 충돌 가능성이 있었다”며 “승객 안전을 볼모로 한 비상식적 행동”이라고 밝혔다. 복잡한 법리를 떠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다. 반면 조현아씨 쪽은 재판 과정 내내 무죄를 주장했다. 국내 최대의 항공사를 운영하는 대한항공이 항공기 운항의 기본이자 승객 안전과 직결된 사안에 대해 평소 얼마나 허술한 인식을 하고 있었는지 재판 과정을 통해 다시 확인된 셈이다. 대한항공이 승객들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허물어진 기본부터 다시 다져야 할 것이다.

대한항공과 조 전 부사장이 충분히 반성하고 기업문화를 일신할 의지를 다졌는지부터도 의문이다. 조현아씨는 재판 과정에서 ‘사건의 발단은 매뉴얼을 숙지하지 못한 승무원들 탓’이라고 주장했다. 또 자신의 명령으로 항공기가 회항한 것을 두고 기장이 판단을 잘못했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다 선고가 다가온 6일부터 조씨는 6차례나 집중적으로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재판부마저 “피고인이 진정한 반성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이번 사건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 자존감을 무너뜨린 사건”이며 “직원을 노예처럼 여기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라는 재판부의 질타도 준엄하다. 이 말이 비단 대한항공과 조 전 부사장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라고 느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땅콩 회항’은 재벌 3·4세로 이어지는 ‘황제경영’의 폐해와 우리 사회 특권층의 천박한 의식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 사례였을 뿐이다. 그런 만큼 조현아씨 개인에 대한 처벌이 사건의 일단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총수 일가가 전제군주처럼 행세하는 전근대적 기업문화, 자질과 무관하게 경영권을 상속받는 후계구도, 노동자와 고객의 인권·안전을 등한시하는 후진적 경영방식 등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근본적 질문들을 더욱 곱씹고 개선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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