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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상처를 치유하긴커녕 후벼파는 정부

등록 2015-04-16 18:39수정 2015-04-17 17:51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년이 된 날이다. 그로부터 1년, 3년, 또는 10년 식으로 햇수가 바뀌어 같은 그날을 기리는 이유는, 그에 맞춰 사건의 의미를 새롭게 기억하기 위함이다. 고통스러운 사건일 경우, 사건의 원인과 책임을 밝히고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의지를 다지는 게 더욱 필요하다. 그날에 맞춰 행사를 하는 것은 기억의 공감대를 만들어내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노력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들렀다. 그러나 헌화나 분향을 하지 못하고 방파제 중간에 서서 대국민 발표문을 읽는 데 그쳤다. 대통령의 일정에 걸맞은 추념 행사는 마련되지 않았다. 희생자 유족과의 만남을 포함한, 제대로 된 행사를 청와대는 처음부터 준비하지 않았다. 외국 방문을 위한 오후 출국 일정을 고정해둔 상태에서, 세월호 비극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고 체면치레를 꾀하려는 인상이 물씬 풍겼다.

이날 아침 이완구 국무총리는 경기도 안산의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았다가 희생자 유족들한테 가로막혔다. 총리는 국무위원을 대표하여 움직이는 사람으로서 그 일정의 의미가 가볍지 않다. 그런데도 총리 쪽은 유족들한테 일정도 미리 알리지 않았으며, 현장에서 이렇다 할 메시지를 내놓지도 않았다. 대신에 정부는 국민안전처 주관으로 경찰과 군인, 소방관, 공무원 등을 불러 모아 ‘국민 안전 다짐대회’라는 홍보성 행사를 열었다. 연관된 전시회에 세월호 참사 사진은 한 장도 없고, 대신 구명조끼와 잠수복, 잠수 헬멧 등을 죽 늘어놓았다고 한다. 정부의 움직임에선 세월호 1주년을 기억하겠다는 진정성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체면치레와 책임 회피, 소소한 홍보에나 관심을 두고 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희생자 유족 모임은 이날 오후로 잡았던 합동 추모식을 취소했다. 정부에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철회와 선체 인양 선언을 요구하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내린 결정이다. 유족들이 숨진 이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1주기 추모 행사조차 제대로 열지 못하게 되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과연 우리 사회가 참극의 교훈을 얻고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1년을 맞아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한 각오를 다지는 것은 남은 자들의 책무다. 이를 위한 사회적 노력으로서 진정성 있는 추념 행사는 반드시 필요했다. 정부는 세월호 상처를 치유하기는커녕 기억하는 데도 참으로 인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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