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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교수 죽음까지 부른 ‘대학 자율 옥죄기’

등록 2015-08-17 18:25수정 2015-08-17 22:16

부산대 교수가 총장 직선제 폐지에 반대하며 투신해 숨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17일 벌어졌다. 부산대에서는 교수회의 단식농성이 이날로 12일째 이어지고 있었다. 대학 당국이 총장 선정을 직선제 대신 추천위원회 방식으로 바꾸려는 게 겉으로 드러난 이유이지만, 사태의 본질은 집요하게 직선제 폐지를 강요해온 정부와 직선제를 지키려는 교수사회의 대립에 있다. 이날 투신한 고현철 교수가 남긴 글처럼 이 문제는 대학의 민주주의,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도 직결돼 있다.

교육부는 선거 과열 등의 폐해를 들어 총장 직선제 폐지를 집요하게 종용해왔다. 이는 헌법에 담긴 대학의 자율성이라는 이념에 역행할 뿐 아니라 현행 법률에도 어긋나는 행태다. 교육공무원법은 총장 선정 방식을 ‘추천위원회 방식’ 또는 ‘해당 대학교수들이 합의한 방식’ 가운데 선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교수들의 뜻에 따라 당연히 직선제를 채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재정지원 등을 무기로 대부분의 국공립대를 굴복시켰고, 부산대가 사실상 유일하게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교육부가 총장추천위원회 위원 선정 때 ‘무작위 추첨’을 하도록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교수들이 추천위원을 뽑고 이들이 총장 후보를 선정하는 간선제 방식마저 ‘직선제의 요소가 남아 있다’는 이유로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제비뽑기하듯 추천위원을 뽑으라니, 지성의 전당인 대학 총장 선정 과정을 초등학교 반장 선거만도 못한 웃음거리로 만드는 짓이다. 교수들로서는 그야말로 심한 굴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총장 직선제는 민주화의 결실로 도입된 제도다. 설사 폐해가 있더라도 그것을 바로잡는 것 또한 대학의 자율성에 맡겨야 마땅하다. 정부의 정책적 개입은 그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직선제 폐지 자체가 절대적 목적인 양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다. 현 정부 들어와선 대학 자율성이 더욱 궁지에 몰리고 있다. 경북대·공주대·방송통신대에서 대학 구성원들이 선정한 총장 후보를 교육부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거부하는 바람에 1년 넘게 총장 공석 사태가 빚어지고 있고, 비슷한 일을 겪던 한국체육대 총장에는 올해 초 전문성과 무관한 ‘친박’ 정치인이 전격 임용됐다.

이렇게 대학의 자율성을 옥죄는 상황이 급기야 교수의 투신이라는 극단적인 저항까지 불렀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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