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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겨레 사설] 박 대통령은 과연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가

등록 2016-10-25 18:25수정 2016-10-25 18:56

이것을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과 국무회의 발언 등 국가기밀을 사전에 ‘첨삭지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국민 사이에 일제히 터져 나오는 한탄이다. 대통령 측근이나 친인척들의 부정비리는 역대 정권에서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엽기적인 사건이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2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최씨의 대통령 연설문 작성 관여 의혹에 대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은 21세기 민주사회는커녕 봉건시대만도 못한 부끄러운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설문 최순실 사전 유출’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기 전에 인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설문 최순실 사전 유출’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기 전에 인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 대통령은 25일 오후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사과가 아니라 변명이었다. “최씨는 과거 어려울 때 도와준 인연으로 일부 연설문 등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는 따위의 변명으로 일관했다. 사안의 심각성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도 부끄러움도 찾아볼 수 없다. 최씨는 대통령 연설문뿐 아니라 정부의 각종 정책서류, 극비 외교문서, 인사 파일까지 손에 넣고 주물렀다.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언론 인터뷰에 대해 “국기를 흔드는 중대한 위법행위”라고 펄펄 뛰었던 박 대통령이 이런 엄중한 사태 앞에서는 ‘왜 그렇게 모두 호들갑이냐’는 식이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박 대통령의 사과 성명으로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더욱 분명해졌다. 나라를 이런 참담한 지경에 빠뜨린 당사자는 다름 아닌 박 대통령 자신이었다. 박 대통령의 의식 속에는 공과 사의 구분 자체가 애당초 없었다. 국가 중요 기밀 관리의 중요성도, 정보 유출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도 없다. 그러니 이런 사태에 대한 죄의식도 없고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한다. 한마디로 말해 공직자의 기본자세도 갖추지 못한 대통령이 국가운영의 총사령탑을 맡고 있는 게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박 대통령은 최씨의 국정 관여가 ‘청와대 보좌체제 완비 이후 중단됐다’고 주장했으나, 이 역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의 증언에 따르면, 최씨는 최근까지도 거의 매일 청와대로부터 30㎝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건네받아 검토했으며, 이 자료는 정호성 제1부속실장이 갖고 왔다고 한다. 최씨의 국정농단이 단순히 연설문 첨삭 정도가 아니라 국정운영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뜻이다. 심지어 이씨는 “최씨가 박 대통령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구조”라고 증언했다. 이 나라 권력서열 1위는 박 대통령이 아니라 최씨라는 세간의 의혹이 단지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셈이다.

이번 사태로 박 대통령은 사실상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아무런 공직도 없는 일반인이 대통령 어깨너머로 국정을 시시콜콜히 간섭해온 나라, 측근 문고리 권력들까지 가세한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이 일상화한 현실에서도 “사회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근거 없는 폭로성 발언” 따위의 엉뚱한 말만 되풀이해온 사람이 바로 박 대통령이다. 그런 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염치로 국민을 상대로 국가 안보니 경제 활성화니 하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지금 국민은 ‘박 대통령은 과연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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