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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겨레 사설] 민심은 ‘대통령의 사퇴 그 이상’을 원한다

등록 2016-11-06 18:17수정 2016-11-06 18:58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확인된 민심은 매우 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책임자인 박 대통령은 당연히 사임해야 하며, 그 길만이 사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외침이었다. 집회 참가자들뿐만이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박 대통령 사임 요구는 이미 50%를 훌쩍 넘어섰고, 날이 갈수록 더욱 높아지는 추세다.

민심은 단지 박 대통령의 퇴진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개조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담겨 있다. ‘최순실 게이트’는 국민의 분노를 일시에 폭발시킨 기폭제일 뿐,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시민들의 가슴속에는 곪을 대로 곪은 우리 현실에 대한 좌절과 분노가 응축돼 있다. ‘헬조선’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사회 전반의 부조리와 불평등, 사회 곳곳에서 난무하는 반칙과 특권, 정·관·재계의 강고한 기득권 체계, 구성원의 기본적 권리를 무시한 채 윗사람이 시키면 무조건 따르는 서글픈 현실 등 모순과 비정상으로 점철된 우리 현실에 대한 분노가 일시에 폭발한 것이다.

지금 국민의 시선은 박 대통령의 사퇴를 떠나 그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를 밑바탕부터 뜯어고쳐 새로운 질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자는 열망이 곳곳에서 분출한다. 그래서 추락한 민주주의와 인권을 되찾고, 퇴행의 늪에 빠진 정치·경제·외교·안보 등 모든 분야를 혁신하자는 외침이다. 집회 현장에서 터져 나온 “박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첫걸음”이라는 말은 이런 정서의 압축적 표현이다.

문제는 국민의 이런 폭발적 열망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아직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 분출하는 열망에 답해야 할 일차적 책임은 박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권에 있다. 그러나 이들의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박 대통령은 국민적 열망을 감지하기는커녕 자신의 권력기반을 계속 유지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 그의 이런 태도는 결국 스스로의 입지를 좁혀 몰락의 길을 재촉하고 있다. 사실 박 대통령이 지금 처한 상황은 아무리 둘러봐도 사임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2선 후퇴니, 내치와 외치의 분리니 하는 말도 실제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국정운영 능력 부재가 확인된 대통령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국방과 외교를 맡는다는 것부터가 난센스다. 도덕적 권위가 땅에 떨어진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을 인정할 군인이 누가 있겠으며, 자기 나라에서 외면받는 대통령을 나라 바깥에서 제대로 상대해줄 리도 만무하다. 1년4개월이나 남은 임기 동안 박 대통령이 2선에 머문다는 것 자체가 나라의 혼란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국정 문란의 방관자이자 옹호자였던 새누리당이야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말할 자격도 없으니 논외로 치자. 그러나 야당 역시 분출하는 국민의 열망을 구현할 준비가 돼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갑자기 몰아닥친 상황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 갈팡질팡하고 있을 뿐이다. 거대한 민심의 흐름을 선도할 능력도, 국민의 뜻을 정치 현실에서 구체화할 복안도 없다. 정국 수습 방향을 놓고 우왕좌왕을 계속하는 것도 결국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비전과 준비가 없다는 징표이다. 이래서는 야당의 미래도, 나라의 장래도 없다.

이미 민심의 둑은 터졌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참여로 결국 큰 변화가 이뤄질 것이다.” 이런 열망은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강물이 돼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의 혼란상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나가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모두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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