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두 귀로 똑똑히 들었을 것이다. 26일 밤 청와대 부근을 구름처럼 겹겹이 에워싼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함성을. “박근혜는 퇴진하라!” 이날 열린 5차 촛불집회는 눈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전국에서 190만개의 촛불이 켜지면서 역대 집회 참가 인원 기록을 또다시 갈아치웠다. 구호도 ‘사퇴’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종전과 달리 “박근혜 체포” “박근혜 구속” 등의 구호가 거침없이 쏟아져나왔다. ‘피의자’로 확인된 박 대통령이 검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 내용을 “사상누각”이라고 헐뜯으며 검찰 수사를 거부한 모습에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피의자 대통령’의 범죄 혐의는 날이 갈수록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27일 ‘문화계 황태자’로 군림하며 각종 이권을 챙겨온 차은택씨를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기소하면서 박 대통령을 또다시 공범으로 적시했다. 박 대통령은 차씨의 측근을 케이티(KT) 임원에 채용시키고 광고를 따내는 데 간여한 것은 물론 광고대행사 포레카 강탈 시도에까지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차씨 측근들의) 보직을 광고 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으로 변경해주라”느니 “포레카가 대기업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라”는 따위의 ‘깨알 지시’를 안종범 전 경제수석에게 수시로 내린 사실도 드러났다.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최소한의 품위마저 내팽개친 치사하고 낯뜨거운 범법행위가 아닐 수 없다.
검찰은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 시한을 29일로 제시해놓은 상태다. 박 대통령은 이제는 참고인이 아니라 피의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어떤 변명이나 항변으로도 검찰 수사 회피를 정당화할 수 없다. 피의자가 계속 수사에 불응하면 검찰은 당연히 강제수사에 나서야 한다. 지위나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한 것이 민주주의다. 검찰은 추상같은 법 집행에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이번주는 박 대통령에게는 이른바 ‘운명의 한 주’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발의, 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 후보자 추천,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 착수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청와대는 이런 삼각 파도를 맞아 박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검찰 수사도 거부한 채 반격의 기회만 노리고 있는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해도 국민의 마음이 움직일 리 없다. 사퇴 선언이 없는 담화는 이제 의미도 없어졌다.
박 대통령의 지금 모습을 보면 몸은 밖으로 다 내놓고 머리만 땅속에 파묻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상황이 변할 리도 없고, 그동안 저지른 죄가 없어지지도 않는다. 국민의 동정심을 구하기에도 이미 늦었다. 선택은 단 하나, 하루라도 빨리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길밖에 없다. 그것이 박 대통령의 체포·구속까지 요구하는 민심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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