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이 지난 주말 서울, 부산, 광주, 대구 등 온 나라를 밝게 수놓았다. 서울 광화문에만 170만명이 모이는 등 전국에서 230여만명(주최 쪽 추산)이 집회에 참여했다고 한다. 1주일 전에 비해 참석자가 줄어들 거란 예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이유는 자명하다. 청와대와 정치권의 정략적인 타협안 모색에 민심이 분노했기 때문이다. 민심은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원하는데, 정치권 특히 새누리당이 ‘내년 4월 퇴진’이니 ‘질서있는 퇴진’이니 하는 말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대통령 탄핵안 가결’ 외엔 다른 어떤 선택이나 대안도 받아들이지 않으리란 걸 청와대와 국회 모두 똑똑히 인식해야 한다.
이번 6차 촛불집회는 참가자 수만 늘어난 게 아니다. 여러 면에서 이전 집회와는 달랐다. 핵심 구호는 ‘박근혜 하야’에서 ‘즉각 퇴진’으로 바뀌었다. ‘새누리당 해체하라’는 구호도 매우 광범위한 호응을 받았다. 축제 같은 분위기는 여전했지만, 이전보다 훨씬 강한 분노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 걸린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란 현수막은 시민들이 던진 달걀로 얼룩졌고, 새누리당 로고가 그려진 붉은색 대형 깃발은 갈기갈기 찢겼다. 국민 분노가 청와대뿐 아니라, 탄핵을 주저하고 오히려 대통령에게 재활의 기회를 주려는 새누리당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거대한 분노의 표적에서 야당 또한 자유롭지는 않다.
새누리당은 지난주 ‘4월 퇴진-6월 대선’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박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퇴진 약속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정도로 탄핵에서 발을 빼고 대선에서 재집권의 발판을 마련해보겠다는 얄팍한 계산이다. 그러나 전혀 뉘우침이 없는 ‘범죄자’를 지금 당장 단죄하지 않고 유예기간을 주겠다는 건 또다른 범죄의 기회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란 게 국민의 생각이다. 훨씬 거세게 타오른 촛불은 새누리당, 특히 비박계에 대한 준엄한 경고이자 더이상 줄타기하지 말고 탄핵 대열에 분명히 서라는 압박이었다. 비박계가 4일 오후 긴급 모임을 가진 뒤 국회의 탄핵안 표결에 동참키로 태도를 바꾼 건 국민 압력에 순응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민심을 이길 수 있는 건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던 비박계는 이제 국민의 뜻이 어디 있는지 분명히 깨달았기를 바란다.
야당 역시 민심을 제대로 읽고 어떤 타협안의 유혹에도 흔들려선 안 된다. 지난주 야당이 보여준 행태는 국민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야당은 대의기관인 국회를 대표해서 현 시국을 수습해야 한다는 나름의 의무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대의기관이라면, 국민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 헌법에 따른 정치적 절차를 진행하는 게 옳은 길이다. 박 대통령이 임기를 몇달 단축해서 ‘명예롭게’ 내려오는 걸 보려고 추운 날씨에도 수백만명이 거리에서 촛불을 드는 게 아니란 걸 명심해야 한다.
지난 주말 광화문엔 416개의 횃불이 타올라 청와대로 향하는 행진을 선도했다.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동시에, 촛불이 횃불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뜻한다. 230만 촛불의 외침은 단 하나, ‘탄핵안 가결’이다. 국회와 여야 정당은 이 요구를 비켜가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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