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개되고 있는 이른바 ‘김영한 비망록’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시대착오적 사고방식과 발언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반헌법적·반민주적 국정 운영 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이들이 검찰 등 정부 조직이나 언론을 ‘지시’나 ‘지도’ 대상으로, 우익단체들을 ‘공작’ 수단으로 활용한 것은 물론이고 헌법재판소와 법원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려 한 흔적이 뚜렷하다. 이미 2년 전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최순실씨 등 비선 실세의 행적을 몰랐을 리 없는 김 전 실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가장 큰 책임을 느껴야 할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는 개인의 영달과 자리보존을 위해 이런 부패구조를 방치 내지 부추긴 국정농단의 또다른 주역일 뿐 아니라, 국정 운영을 1970년대로 후퇴시킨 책임 또한 그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비망록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연내 선고’ 방침을 2주일이나 미리 알았고 해산 결정 등 평의 내용도 선고 이틀 전에 알고 있었다. 사전에 유출됐다면 명백한 불법이다. 국정원 댓글사건의 선거법 위반 혐의 무죄 판결을 ‘지록위마’라며 비판한 부장판사에 대한 ‘직무배제 방안 강구’를 지시해 관철하고, 간첩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판사도 손보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정윤회 파동 당시 검찰을 조종해 ‘비선 실세 의혹’ 사건을 ‘문건 유출’ 사건으로 뒤집은 수준을 넘어 사법부까지 통제하려 했다면 삼권분립의 헌법 근본체계를 뒤흔드는 국기문란의 만행이 아닐 수 없다.
이뿐 아니다. 정권 비판 보도 언론사에 불이익을 주고, 세월호 단식 유족에게 국민적 비난이 가해지도록 언론을 ‘지도’하며, 정부부처 실·국장의 ‘충성심’을 확인해 ‘독버섯처럼 자란 (김대중·노무현 정부) 인사’는 찍어내도록 했다. 전교조의 법외노조화를 지휘하고, 우익단체는 야당 정치인 고발과 시위 등 정권의 앞잡이로 동원했다.
김 전 실장이 차은택·김종씨 등의 잇따른 증언에도 불구하고 최순실씨를 모른다며 잡아떼기로 일관하는 데는 검찰의 책임도 크다. 수많은 불법·탈법이 그의 지시 아래 이뤄졌는데도 압수수색은커녕 소환조차 않은 것은 스스로 직권남용과 직무유기의 ‘공범’임을 자백하는 꼴이다. 국정조사와 특검을 통해 진상을 낱낱이 밝혀 김 전 실장 등 관련자를 엄히 처벌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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