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청문회(7일)에서 ‘모르쇠’로 일관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한 비난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그는 “심장에 통증이 있지만 국민이 부르는 것이라 생각해 나왔다”고 했으나 이름 석자 빼고는 모두 거짓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설득력 없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박근혜·최순실 일파’가 저지른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 역사적 범죄인지, 이를 방조·은폐한 자신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법적·정치적으로 더이상 용서의 여지가 없다.
김 전 실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은 ‘사사로운 일’이라 몰랐고, 관련자 증언까지 나온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해임도 “자르라고 한 적 없다”고 부인하는 등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 ‘모른다’거나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특히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작성한 ‘업무일지’의 내용은 누가 봐도 자기 지시가 분명한데도 “작성자의 주관적 생각도 가미된 것”이라며 빠져나갔다.
최순실씨에 대한 말바꾸기는 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결정적 사례다. 애초 최씨를 “태블릿피시(연설문 유출 보도)가 나왔을 때 알았다”고 주장하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씨 행적이 적시된 2년 전 ‘정윤회 보고서’를 제시하자 “착각했다”며 한발 뺐다. 2007년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 동영상까지 틀자 “나이가 들어서…”라고 변명하면서도 끝내 “접촉은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부터 그가 몸담았던 중앙정보부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최태민씨(최순실씨 아버지) 문제였을 뿐 아니라, 2014년 ‘정윤회 게이트’ 때도 최순실씨 일가 행적을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샅샅이 조사한 바 있다. 최씨 사무실에서 그를 봤다는 주차관리원의 증언도 있다. 최씨를 몰랐다는 그의 주장은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을 방조·은폐한 책임을 피하려는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업무일지’에는 40년 전 중정 대공수사국장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김 전 실장의 시대착오적인 사고와 행적이 잘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냉전적 사고에 사로잡혀 정권 비판을 ‘적’으로 보고, 극단적 우익단체를 동원하는 등 ‘공작’을 통해 나라 전체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넣은 죄는 무엇보다 심각하다. 간첩조작으로 민주주의를 갉아먹고 ‘우리가 남이가’로 지역갈등을 조장하며 40여년간 권력에 기생해온 그에게 이제 단호한 법적·역사적 심판을 내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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