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뒤 열린 10일의 제7차 촛불집회에도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넘는 시민이 운집했다. 탄핵안이 이미 가결되었고 날씨가 어느 때보다 추웠으며 계속된 집회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라는 점을 참작하면, 230만명이 모였던 제6차 집회에 뒤지지 않을 만한 열기라고 할 수 있다. 시민의 바람이 단지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 한 사람을 끌어내리자는 데 머물지 않고, 이런 사태를 초래한 정치·검찰·재벌·교육·언론 등에 대한 총체적이고 철저한 개혁에 맞춰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탄핵 이후의 정국이 민심을 배반하는 방향으로 흐를 경우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와 결의의 표현이기도 하다.
10일의 집회에서는 다른 여타 구호보다도 대통령 직무대행을 맡은 황교안 총리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눈에 띄었다. 황 총리가 대통령의 혼용무도한 국정의 조력자이자 부역자였다는 점에서 민심의 당연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당장은 정해진 법 절차에 따라 황 총리가 불가피하게 직무대행을 이어받았지만, 그와 그가 이끄는 내각도 대통령 탄핵과 함께 ‘정치적 탄핵’을 받았다. 황 총리가 얼마나 대행 노릇을 할지 모르지만 이런 준엄한 역사적 평가를 직시하는 것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안보와 경제도 중요하지만 황 총리가 대행의 첫 업무를 ‘반성과 사죄’가 아니라 현안 챙기기로부터 시작한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내각의 일원 중 탄핵당한 대통령과 함께 울었다는 사람은 있어도 ‘내 탓이오’ 하면서 사표 내거나 자책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보고, 어느 누가 이런 내각을 신뢰하겠는가. 황 대행은 거취에 대한 가닥이 잡힐 때까지 죄인의 자세로 자중하면서 ‘완장’ 노릇을 자제해야 마땅하다.
대통령이 공백 상태에 있고 내각이 불신받는 상황에선 민의의 전당이며 선출 권력인 국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국회는 국민의 신뢰를 잃은 대통령 및 행정부를 대신해, 책임감과 소명감을 가지고 국정운영을 주도할 책임이 있다. 마침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이 탄핵안 가결 직후 국정운영의 중심 기구로 ‘국회·정부 정책 협의체’와 ‘여·야·정 협의체’를 제안한 것은 바람직하다. 새누리당의 정진석 원내대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여·야·정 협의체의 가동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다만, 새누리당이 이 협의체에 참여하더라도 대통령의 폭정에 친위대 노릇을 해온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는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그래야 협의체의 권위와 정당성이 생긴다.
황교안 대행이 이끄는 내각도 이 기구에 하루빨리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마땅하다. 비상상황을 관리해 나갈 권위와 정통성을 지닌 이 기구를 무시하고, 대행 내각이 섣불리 독자 행동을 하려다가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민심이 가만히 앉아 있지 않을 것이다.
친박을 배제한 여야가 주도하는 여·야·정 협의체가 대통령 없는 비상 시기에 정책 조정 및 결정을 하고 황 대행이 이끄는 내각이 협의체에서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는 일을 한다면, ‘부역자 황교안 총리,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도 자제력의 한계 안에 머물 수 있을 것이다. 이젠 촛불의 성숙한 자세에 정치권이 응답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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