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가 18일 공개됐다. 예상대로 온갖 궤변과 황당한 논리를 총동원해 박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게 없다고 우겼다. 반성이나 성찰은 없이 ‘끝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겠다’는 욕심과 오기만이 넘쳐난다.
박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인식은 “최순실씨의 국정 관여 비율은 대통령 국정 수행 총량의 1% 미만”이라고 ‘최순실 국정농단’을 합리화한 대목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최씨가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들을 수족처럼 부리며 각종 국정에 개입하고 사익을 챙긴 것은 수치로 따지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국가 기본질서 와해 행위다. 그것을 ‘1% 미만’의 ‘사소한 문제’라고 잡아뗀 것 자체가 헌법질서 수호 책무에 대한 박 대통령의 무개념과 무책임을 잘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도대체 비선 실세들이 얼마나 국정을 농단해야 20%, 30%라고 인정할 것인가. 이런 답변 하나만으로도 박 대통령이 탄핵당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을 시켜 현대차 그룹이 최순실씨 일당이 운영하는 케이디코퍼레이션에서 납품을 받도록 강요한 것을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것”이라고 변명한 것은 궤변의 극치다.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은 우리나라에 350만개가 넘는다. 그런데 유독 최씨 회사를 콕 찍어 지원을 지시해놓고 ‘중소기업을 돕기 위한 좋은 취지’라고 둘러대니 참으로 뻔뻔하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의 행적에 대해서도 “청와대에서 정상근무하면서 신속하게 중앙재해대책본부에 나가 현장 지휘를 했다”고 주장했다. 관저에서 ‘올림머리’나 하면서 ‘비정상 근무’를 하고, 사건이 일어난 뒤 7시간이 지나서야 중대본에 도착한 그가 ‘정상근무’ ‘신속’ 따위의 표현을 쓴 것은 파렴치의 극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무책임, 생명 경시, 비인간적 태도에 다시금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답변서에서 ‘선의’ ‘주변 관리 잘못’ ‘사익 추구는 없었다’는 따위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무죄를 주장했다. 이미 대기업 총수들이 국회 국정조사 과정에서 미르·케이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에 대해 “청와대의 출연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는데도 여전히 “자발적 모금”이라고 강변할 정도니 할 말을 잃는다.
답변서를 통해 드러난 박 대통령 쪽의 전략은 매우 분명하다. 치열한 법리 공방으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최대한 늦추면서 반전의 기회를 노리겠다는 속셈이다. 헌재가 특검과 검찰에 최순실 게이트 수사 기록을 요청한 것에 대해 대리인 쪽이 “헌재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이의신청을 낸 것도 이런 속셈을 잘 보여준다. 헌재의 빠른 결정을 통해 국정운영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민심의 요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마지막까지도 국민에 대한 책무와 예의를 내팽개치고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