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를 전면 부인하더니 19일 법정에 선 최순실씨도 검찰 공소사실 11가지를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국회 청문회에 앞서 친박 의원들과 최씨 측근들이 태블릿피시가 최씨 것이 아니라고 위증하도록 입을 맞췄다는 의혹에 이어 최씨 변호인 역시 같은 주장을 펴며 재판부에 검증을 요구했다. 그동안 언론의 추적 보도와 검찰 수사로 확인돼 온 국민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내용마저 뒤집으며, 재판 절차라도 지연시켜 보겠다는 저의가 읽힌다. 국민에게 사과 회견을 하고 “죽을죄를 지었다”며 용서를 빌던 그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다.
물론 법정에서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다. 그러나 국민이 참아줄 수 있는 한계를 넘는 정도가 되면 스스로 죄를 버는 일이 될 뿐이다. 헌법과 법률을 제멋대로 뭉개놓고 이제 와서 법의 보호를 요청하는 모습은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낸 답변서에서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인식하지 못했다”며 “최순실을 잘못 믿은 것은 정치적 도의적 책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책임을 최씨에게 떠넘기고 자기는 전혀 몰랐다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문서를 유출한 것도 단순한 자문에 불과하다며 미국식 은어 ‘키친 캐비닛’까지 동원했다.
최씨와 변호인이 이날 박 대통령과의 공모 등 일체의 혐의를 부인한 것도 헌재 답변서의 기조를 충실히 따른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과의 면담은 꺼리면서 최씨의 국정농단을 ‘키친 캐비닛’ 운운하는 것 자체가 국민을 우롱하는 궤변이다. 박 대통령과 최태민씨 일가가 40년이나 일심동체로 지내며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공유해왔다고 상당수 국민이 믿고 있는 것과도 동떨어진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최씨와 변호인은 법정에서 “독일에서 어떤 벌이든 받겠다고 돌아왔는데, 들어오는 날부터 새벽까지 많은 취조를 받았다”며 “수사관을 구치소로 보내 불법체포하는 등 인권침해적 수사가 있었다”는 주장까지 폈다. 최씨 공소사실도 아닌 태블릿피시에 대해 양형에 결정적인 증거라며 감정을 요구한 것도 탄핵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공소사실 전체를 음모론으로 흔들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태블릿피시 등을 통한 공무상 비밀누설로 기소된 정호성 전 비서관이 이미 대통령과의 ‘공범’임을 자백한 마당에 최씨 쪽 주장은 정치공방을 노린 게 아니라면 명분이 약하다.
박영수 특검팀이 21일 현판식을 열어 공식 수사를 시작한다. 박 대통령의 뇌물 혐의와 김기춘·우병우 등의 직권남용 혐의 등 수사할 대목이 많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과 최씨 일가가 40년 동안 쌓아온 재산 등 유착관계를 꼭 파헤쳐 이들의 실체를 온 국민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낼 책임도 막중함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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