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강도 높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정부의 한 부처 전체가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잘못을 사과한 것은 정부 수립 이래 초유의 일이다.
문체부의 대국민 사과는 당연하다. 그동안 언론보도와 특검수사로 문체부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하수인 노릇을 했음이 드러났다. 유진룡 전 장관을 포함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공무원들이 청와대의 압박을 받아 모조리 쫓겨난 뒤에 문체부는 거대한 범죄소굴이 되고 말았다. 뒷골목 조폭 집단을 정부 부처 안으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그 소굴에서 온갖 불법행위가 저질러진 끝에 김종덕 전 장관, 정관주 전 1차관, 김종 전 2차관에 이어 현직 장관으로 있던 조윤선 전 장관까지 구속됐다. 일망타진되듯 한 부처의 고위직 인사가 이렇게 한꺼번에 구속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문체부가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책을 약속했지만, 그런 반성문 하나로 문체부를 향한 국민의 싸늘한 시선이 거두어질 리는 없다. 대국민 사과를 주도한 송수근 문체부 장관 대행부터가 문제다. 송 대행은 문체부 기획조정실장 시절 ‘건전콘텐츠 태스크포스팀’ 팀장을 맡아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문제사업’을 총괄하는 일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사람이 장관 대행을 맡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블랙리스트 관련 실무를 담당한 문체부 하위 공직자들의 죄도 가볍지 않다. 문체부와 산하기관 공무원들이 법과 인권을 지킨다는 원칙에 충실했다면 블랙리스트 범죄의 손발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혼 없이’ 부화뇌동한 실무자들도 잘못에 걸맞은 처벌과 징계를 받아야 한다.
블랙리스트 사태는 문체부로서는 부처 창설 이래 처음 겪는 뼈아픈 일이다. 문화예술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데 앞장서야 할 부처가 문화파괴의 주범이 되고 말았으니 그 참담함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문체부는 사과문에서 외부의 부당한 간섭과 차별을 배제하고 문화예술계의 자율성을 확립할 방안을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선언적 차원의 대책만으로는 부족하다. 환골탈태하겠다는 각오로 더 근본적인 혁신책을 내놓아야 한다. 블랙리스트에 책임 있는 사람들을 깨끗이 청산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보·관광까지 포괄하는 문체부의 방만한 조직을 문화 중심으로 축소하는 해체 수준의 조직 재편성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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