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쪽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 대놓고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 대통령 쪽은 23일 8차 공개변론에서 느닷없이 39명을 증인으로 추가 신청했다. 다 들어주면 증인신문에만 2~3주가 훌쩍 지날 판이다. 더구나 신청된 증인 가운데 11명은 검찰에서 변호인 참여 아래 작성된 조서가 이미 탄핵심판의 증거로 채택된 터다. 또 상당수는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이런 사람들까지 무더기로 증인 신청한 것은 탄핵 결정을 늦추려는 의도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박 대통령 쪽의 계산은 분명하다. 헌재는 이날 증인 7명을 일단 추가로 채택해 2월1일과 7일 변론기일을 열기로 했다. 이로써 1월31일 퇴임하는 박한철 헌재소장은 최종 결정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 탄핵 인용에는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므로, 대통령 쪽은 이것만으로도 사실상 ‘반대 1명’을 얻은 셈이 된다. 3월13일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 만료 이후까지 심판이 늦춰지면 그에 더해 결정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그러니 대통령 쪽은 시간을 끌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려 들겠다. 심지어 대리인단을 교체하거나 뒤늦게 대통령의 헌재 출석 따위를 이유로 거듭 지연을 시도할 수도 있다.
악착같이 시간을 끌려는 이유 또한 분명하다.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활동 종료 전에 나오면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가 본격화할 수 있고, 불소추특권의 상실로 기소도 가능해진다. 박 대통령으로선 한사코 피하고 싶은 상황일 것이다. 대통령 측근들이 이런저런 핑계로 헌재 심판에 출석하지 않는 것이라든지, 대리인들이 ‘수준 미달의 막장 변론’까지 불사하며 억지로 논란을 이어가려는 것도 모두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래야 당장의 형사소추도 모면하고 지지층을 끌어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런 일들이 대통령 뜻과 무관할 리 없다. 박 대통령은 당장의 구명을 위해 나라를 한없이 혼란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의식이라도 있다면 이럴 순 없다.
헌재는 대통령 쪽의 훼방을 묵과하지 말아야 한다. 의도가 뻔한 요구와 주장은 과감히 차단하는 것이 옳다. 헌재의 조속한 결정은 국정 공백과 혼란을 최소화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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