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31일 임기 만료로 퇴임했다. 이에 따라 헌재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은 재판관 8명으로 진행해야 하게 됐다. 8명으로도 심판과 결정에 흠은 없다. 재판관 수와 관계없이 6명 이상 찬성으로 탄핵이 인용된다. 하지만 3월13일 이정미 재판관까지 퇴임해 7명만 남으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심판이 큰 지장을 받게 되고, 결과도 왜곡될 수 있다. 박 소장의 퇴임사대로, 대통령 직무정지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의 중대성에 비추어 조속히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점은 모든 국민이 공감할 터이다.
걱정은 박 대통령 쪽 때문이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증인을 무더기로 늑장 신청했다가 대부분 기각되자, 이번에는 사실조회 등을 잇달아 신청했다. 검찰 수사로 이미 규명된 증거들이다. 다 들어주면 또 며칠이 훌쩍 지난다. 대통령 쪽은 앞으로도 뚜렷한 필요성이 없는 증인 신청이나 사실조회를 남발할 태세다. ‘시간 끌기’가 분명하니 재판부가 단호하게 제동을 걸어야 한다. 이미 대통령 쪽 증인이 국회 소추인단 쪽 증인의 두 배 이상이니, 대통령 쪽이 공정성을 문제 삼기는 매우 어색해졌다. 지금은 신속한 진행이 우선이다.
대통령 대리인단이 전원 사퇴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새로 대리인을 선임하려면 또 1~2주가 필요하다는 점을 노린 것이겠다. 안 될 일이다. 심판 결과가 불리할 듯하다고 이런 식으로 판을 엎는 짓을 그냥 둬선 안 된다. 심판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에서 대통령 쪽이 스스로 방어권을 포기한 것이니 궐석 심판을 진행하면 될 일이다. 헌법재판소법이나 헌재심판규칙 등을 봐도, 탄핵심판에서 대리인이 꼭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은 변호사의 조력이 필요한 민간인이 아니라 국가기관이고, 본인 변론까지 가능한 탄핵심판에서 변호인 선임이 강제된다고 볼 여지도 없다. 헌재는 지연책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서둘러 끝내야 할 국정 공백을 되레 장기화시키는 것도 모자라 온갖 억지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지금의 모습은 기가 막힌 일이다. 헌법기관인 헌재의 심판을 방해하는 것도 대통령의 책무와 정면으로 어긋난다. 온갖 비리가 속속 사실로 드러나는 터에 장외에서 “엮였다”고 억지 주장을 편다고 해서 잘못이 사라질 리도 없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헌재 심판에 협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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