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7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세번째 구속영장 청구다. 정치적으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드러난 국정농단의 파렴치한 사례들과 박 전 대통령이 취해온 오만불손한 태도에 비춰보면, 법리적으론 매우 당연한 귀결이자 ‘사필귀정’이요 ‘인과응보’가 아닐 수 없다.
우리 헌정사에서 전직 대통령들의 비극적 말로는 유별날 것도 없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기괴하고도 황당한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수사로 드러난 사실만 봐도 그는 겉으로는 청렴하고 원칙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듯이 행세했으나 모두 새빨간 거짓이었다. 뒤로는 대통령 지위를 이용해 재벌의 돈을 뜯어내서 측근과 공유하는 정경유착의 가장 추악한 범죄자였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온 국민이 언론의 발굴취재와 세차례의 수사를 통해서 박 전 대통령의 죄악과 위선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음에도, 혼자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적용한 혐의의 가장 중요한 고발자이자 증인은 바로 그가 수족처럼 부리던 참모들이었다. 칙어 받아적듯 깨알같이 메모한 업무수첩,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녹음한 녹취파일이 그를 옭아맨 결정적 물증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스스로 국정농단의 물증을 간직하라고 독촉한 꼴이니 이제 와서 누굴 탓하겠는가.
구속영장은 ‘인과응보’
검찰은 이날 “대통령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기업에서 금품을 받도록 하고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권력남용적 행태를 보이고 중요한 공무상 비밀도 누설하는 등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고 밝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새로 확인한 5개 등 모두 13개의 혐의사실은 대부분 완벽한 증거가 확보돼 있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측근과 참모들이 여럿 구속돼 있는데도 끝까지 책임을 이들에게 돌리며 자기만 빠져나가려 발뺌한 것은, 대통령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도 패륜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일부 인사들은 “사익은 추구하지 않았다”거나 “옷 한벌 얻어입은 것밖에 없다”(홍준표)며 그를 옹호한다. 그러나 검찰은 박근혜-최순실 두 사람이 경제적 이익을 공유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서울 삼성동 집값을 최씨 쪽에서 지불하는 등 경제활동을 함께 해온 증거가 여럿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최순실씨 회사 광고물량을 챙겨주고, 기업과 은행 인사에까지 시시콜콜 개입한 것은 경제적 동기가 아니라면 납득이 가질 않는다. 최씨 일가가 보유한 수천억원대 재산과 해외 재산 등의 실소유주 의혹은 앞으로 분명하게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검찰이 “대부분의 범죄 혐의를 부인하는 등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상존한다”고 밝혔듯이, 박 전 대통령은 사건 초기부터 진정한 참회와 반성을 하기는커녕 꼬리자르기와 은폐·조작으로 일관했다. 물증으로 드러난 혐의를 “엮었다”고 발뺌하고,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도 터무니없는 이유로 거부했다.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나 특권을 박탈당한 뒤 어쩔 수 없이 검찰에 나오면서도 끝까지 진솔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70% 이상의 압도적 여론이 그를 구속해야 마땅하다고 보는 이유다. 일부에서 전직 대통령이란 이유로 불구속 등 선처를 주장하지만 어디에도 정상을 참작해줄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부인과 은폐로 일관, ‘선처’ 여지 없어
박 전 대통령이 혐의 부인을 넘어 공작정치로 여론을 호도하려 한 것은 매우 악질적이기까지 하다. ‘박근혜 청와대’는 정무수석실을 통해 시민단체의 탈을 쓴 극단세력에게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걷은 돈을 쥐여주며 돌격대로 동원했다. 검찰은 그 진상 역시 철저히 밝혀 엄히 처벌해야 한다. ‘마마’를 입에 올리며 ‘야구방망이’로 민주 절차를 위협하는 세력은 보수도 시민단체도 아니다. 이들을 그대로 두고 통합이니 화합·포용을 거론하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다. 한국의 보수정당은 ‘박근혜 단죄’를 계기로 극단세력과 결별해야 한다. 수구의 껍질을 벗고 건강한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마침 세월호가 수면으로 올라온 다음날 그 생때같은 생명들을 방치한 책임자가 법적 처단의 기로에 선 것은 많은 것을 상징한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 결정문 보충의견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이 당일 오전 10시에 집무실에 나와 정상근무를 했다면 생명들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그런데도 절체절명의 7시간을 허비한 지도자가 제 한 몸 살겠다고 자기 조서는 7시간이나 밤새워 꼼꼼히 읽었다니 국민과 유족들이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탄핵으로 파면한 박 전 대통령을 법적으로 엄히 단죄함으로써 그가 남긴 적폐를 청산하고 ‘박정희-박근혜 시대’를 매듭짓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법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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