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노동계 만찬에서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왼쪽)이 건배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한국노총 지도부 등 노동계 인사들과 만났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간 노동계가 노동 현안에서 소외되며 ‘유령 같은 존재’로 취급된 것을 생각하면, 노동을 대하는 청와대 시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이날 만남은 의미가 적잖다. 민주노총이 끝내 불참한 것은 그래서 더 안타깝다.
민주노총은 불참 이유로 청와대 쪽이 산하 단위노조를 개별 접촉하고 선별적으로 초청해 민주노총의 조직체계와 질서를 훼손했고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을 간담회에 동석시키는 점 등을 들었다. “진정성 있는 간담회보다 정치적 이벤트를 위한 만찬 행사를 앞세우는 행보”가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만남이 교섭의 장도 아닌데, 초청하는 쪽이 대상을 정했다고 참석 자체를 거부하는 건 아무래도 군색해 보인다. 노사정위원장 동석으로 노사정 대화가 바로 공식화하는 것도 아닌데, 이를 거부 명분으로 삼은 것도 과하다.
이날 만남이 이벤트성 아니냐는 비판은 있을 수 있다. 청와대도 내용과 초청 형식을 초청 대상과 세심하게 의논하고 준비하지 못한 미숙함은 지적받을 만하다. 하지만 실질적인 대화나 교섭도 일단 만나서 말을 터야 시작되는 법이다. 노동계 일부에선 ‘사회적 대화’에 대한 압박이 노동계 양보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이를 견제하는 분위기도 있는 듯하다.
지금은 어느 한쪽이 아니라 노, 사, 정 세 주체가 모두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요구가 절박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은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만 갖고 되는 건 아니라 노동계가 함께 해줘야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대화에 앞서 정부의 신뢰회복 조처가 필요하다지만, 이는 동시에 풀어가야지 선후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정부 또한 사회적 대화를 막연히 호소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노사정위원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노동계 비판이 어떤 구조 탓에 나오는 건지,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면 어떤 틀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깊이 검토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 불참으로 빛바래긴 했지만, 대통령이 직접 노동계 인사들을 만난 건 바람직하다. 이런 만남이 ‘매우 이례적인 일’이나 ‘일회성’으로 그쳐선 안 될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이 재계 인사들과 만나는 것은 당연시되고 노동계와 만나는 것은 낯설게 여겼다. 이번 만남이 노-정 간의 실질적 대화, 나아가 사회적 대화의 복원이라는 결실로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