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마지막 날, 그는 예약도 없이 찾아온 환자의 진료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다급한 순간에도 간호사들의 대피를 끝까지 확인했다고 한다. 정신질환자들이 편견 없고 차별 없이 치료받는 세상을 위해 헌신해온 그의 죽음 앞에 그 어떤 말로도 안타까움을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가 외래환자의 흉기에 숨진 사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2일 ‘예고된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얼마 전 응급의료 종사자에 대한 폭행 처벌을 강화하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긴 했으나, 응급실뿐 아니라 진료실을 비롯해 병원 곳곳에서 의료 종사자들은 상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의료계는 말한다. 특히 환자와 의사의 일대일 대면 진료가 많고 돌발적인 위험 상황이 드물지 않은 정신과 진료실에 대해선 실태조사조차 변변히 없다. 비상대피실이나 비상벨 설치 등도 의무사항이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정신과 진료환경 조사에 나서고, 자해·가해 위험이 있는 환자의 경우 외래치료명령제를 강화할 뜻을 밝혔다. 이를 위해 보호자 등의 동의 절차를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도 설명했다. 환자가 퇴원 뒤 ‘방기되는 현실’은 개선되어야 마땅하지만,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신질환자의 병원 밖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한 진단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자칫 통제 강화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나 인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고인과 유족이 바라는 바도 아닐 것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달라’는 것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유족의 두가지 바람을 전했다. 대한의협도 이번 사건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어선 안 된다고 경계했다. 분명한 것은 ‘의료진이 안전한 환경’과 ‘정신질환자들의 완전한 치료환경’은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0여년간 우울증 등 불안의학 분야에 큰 기여를 했고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프로그램 개발자로 헌신해온 고 임세원 교수는 ‘한없이 자신에게 엄격하고 환자에겐 따뜻한 의사’였다고 동료들은 기억했다. 그 빈자리가 클 것이다. 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