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셰익스피어 희곡 <아테네의 티몬>의 주인공 티몬은 해변의 동굴에서 황금을 발견하고 이렇게 외친다. “이것은 검은 것을 희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만든다. 나쁜 것을 좋게, 늙은 것을 젊게, 비천한 것을 고귀하게 만든다.” 황금, 곧 돈은 “문둥병을 사랑스러워 보이게 하고, 도둑을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히고, 도둑에게 작위와 궤배와 권세를 준다.” 돈이야말로 “노란빛의 구원자, 눈에 보이는 신”이다. 청년 마르크스는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티몬의 이 외침을 인용한 뒤 돈의 속성을 분석한다. 돈은 모든 것을 사들일 수 있고, 모든 대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돈은 ‘뒤바꾸는 힘’이다. ‘미움을 사랑으로, 악덕을 덕으로, 노예를 주인으로, 우둔함을 총명함으로’ 바꾼다. 아무리 사악하고 비열한 인간도 돈이 있으면 존경받는다. 돈이 존경을 사들이기 때문이다. 돈은 실상을 감추고 가상을 만들어낸다. 돈은 거짓을 진실로 뒤바꾸는 힘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뒤 내놓은 10억엔은 실상을 감추는 가상으로서 돈의 속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원한 것은 일본 정부의 진실한 사죄와 배상이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10억엔이라는 돈이 사죄를 대신할 수 있기라도 한다는 듯, ‘돈을 내놓았으니 이제 다 끝났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외무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이 전부였다. 1년 뒤 국회에서 ‘위안부 합의’에 명시된 사죄 메시지를 편지에 써서 전할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 “털끝만큼도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먼젓번 사과 발언이 ‘털끝만큼’의 진정성도 없는 것임을 스스로 폭로했다. 10억엔이라는 돈은 아베의 선조들이 저지른 죄를 덮고 역사의 치부를 감추는 가림막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돈이 거짓을 진실로 바꾸는 데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게오르크 지멜은 <돈의 철학>에서 마르크스의 진단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돈은 개인의 가장 고유한 내면 안에서 성취될 수 있는 가장 내면적인 것을 지키는 수문장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돈은 내면의 진실을 지키는 힘이 되기도 하고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지난주 나비가 돼 세상을 떠난 김복동 할머니의 돈이 그런 경우다. 할머니는 없는 돈을 쪼개 분쟁지역 아이들 장학금에 썼으며, 여성인권상 수상으로 받은 5000만원을 다른 나라 전쟁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해 썼고, 일본에서 차별받는 ‘조선학교’에 수천만원을 기부했다. 열네살 어린 나이에 성노예로 끌려가 모진 세월을 보냈지만 그 폭력의 세월도 할머니가 품은 내면의 뜻과 꿈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돈은 아프고 상처받은 사람들과 김복동의 고난에 찬 삶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이었다.
지난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일본대사관터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에서 시민들이 떠나는 할머니를 향해 노란 나비를 흔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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