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가운데)이 15일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평양/AP연합뉴스
북한이 15일 미국과 협상을 중단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날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렸다’면서 북한이 미국과 협상을 지속할지, 핵·미사일 실험 유예를 유지할지를 곧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향후 행동계획을 담은 공식성명을 곧 발표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성명 내용에 따라 사태가 심각한 국면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엿보인다.
북한이 태도를 바꾼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최 부상이 “미국의 강도 같은 태도가 상황을 위기에 빠뜨렸다”며 “우리는 미국의 요구에 양보할 의사가 없다”고 한 데서도 드러나듯이,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대북 압박이 강경 선회의 배경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노이 회담 뒤 김 위원장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런 기차 여행을 다시 하겠는가’라고 했다는 최 부상의 말에서 북한이 느낀 실망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이어 실무협상을 이끄는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마저 ‘전부 아니면 전무’ 식 빅딜 해법을 공식화하고 나선 것은 북한에 사실상 굴복을 요구하는 것으로 비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미국의 빅딜 압박이 지나친 면이 있다 하더라도 북한이 협상 중단 가능성을 언급하고 핵실험 유예까지 재고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옳은 방식이 아니다. 이래서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기도 어렵다. 이런 식의 대치가 격화하다가 돌발적 상황이라도 벌어지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번질 수 있다. 북한은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며, 사태를 악화시키는 행보를 자제해야 한다. 만에 하나 핵·미사일 실험이 재개된다면 지난 1년 남짓 어렵게 만들어온 북-미 대화 분위기는 일거에 사라질 것이 뻔하다.
상황을 되돌릴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최 부상이 “최고지도자 간 개인적 관계는 여전히 좋고 궁합도 완벽하다”고 말한 것은 북한도 사태가 더 악화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는 좋은데 참모들이 협상을 방해한다는 판단을 내비친 것으로 보아, 협상 재개를 위해 한국이나 중국이 중재 역할을 해달라는 뜻을 에둘러 밝힌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 정부는 최대한 빨리 북한의 의도를 확인해 북-미 대치가 격화하지 않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힘들게 쌓아올린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