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박 대표의 관념에 갇힌 한나라당 |
충북 제천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는 당이 스스로 ‘위기 진단’을 내리고 있던 터여서 관심을 모았다. 당 연구소는 “당의 부정적 이미지가 심각해 다음 대선 전망이 그다지 밝지 못하며, 중도 실용주의에 기반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를 토대로 1박2일 동안 갑론을박을 벌인 결과는 실망스럽다.
국가보안법 등 쟁점법안에 대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시급하지도 않은 법을 갖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4대 분열법”이라며 임시국회 회기내 처리에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국정원의 과거사 조사와 과거사법에 대해서도 “정권이 역사를 전유물로 해서는 안 되며, 역사 평가는 학술원에서 해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당의 보고서는 지지층조차 당을 가장 귀족적이고 수구적인 정당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나라의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 본질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곤 과감하게 탈이념을 선언해 중도적 견지에서 보수층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박근혜 대표는 이런 자가 진단과 처방에도 귀를 닫은 셈이다. 당내 여러 계파가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 것을 요구했지만, 박 대표는 이를 봉합했다.
이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선입견과 고정관념의 포로가 되어 있는 탓이 크다. 악법인 국가보안법 폐지를 시급하지 않다고 하고, 보안법이 없으면 마치 나라가 거덜날 것처럼 말하는 것은 이성적인 사고가 아니다. 부당한 인권탄압으로 인한 신음이 아직 계속되는 상황에서 과거사 문제는 정치권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숙제다. 이를 정략이라며 역사학자에게 맡겨두자는 것은 피해자 가슴에 두 번 못을 박는 일이다.
박 대표는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수없이 사과했다고 하나, 진정한 사과는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입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박 대표와 같은 관념에 갇혀서는 한나라당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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