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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72년 만의 ‘여순사건’ 무죄, 특별법 제정해야

등록 2020-01-20 18:31수정 2020-01-21 02:39

여순사건의 민간인 희생자였던 고 장환봉씨가 7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아내진점순(왼쪽)씨와 딸 장경자씨가 20일 오후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린 재판에 참석한 모습.
여순사건의 민간인 희생자였던 고 장환봉씨가 7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아내진점순(왼쪽)씨와 딸 장경자씨가 20일 오후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린 재판에 참석한 모습.

“오늘은 우리 아버지가 너무 그립습니다.”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재심에서 72년 만에 무죄가 선고된 20일, 고 장환봉씨 딸이자 재심 청구인인 장경자씨가 한 말이다. 뜻깊지만, 국가폭력에 의한 억울한 죽음과 ‘빨갱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수십년간 유가족이 겪어온 고통을 생각하면 늦어도 너무 늦은 판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재판부가 촉구했듯, 이제 더이상 유족 개별의 노력이나 싸움이 아닌 국회의 특별법 제정을 통해 희생자 전체에 대한 명예회복과 진실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당시 전남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 2천여명이 제주 4·3 진압에 출동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며 시작됐다.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진압군과 반군의 공방 속에 2천여명이 희생됐고 순천 일대에서만 민간인 430명이 ‘반군을 도왔다’는 등의 이유로 일부는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집단 사살됐다. 무죄를 선고받은 고 장환봉(당시 29·철도공무원)씨 역시 내란 혐의와 국권 문란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된 지 20여일 만에 46명과 함께 사형이 집행되고 시신은 불태워졌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 김정아 부장판사는 “장씨는 좌익도 우익도 아닌 명예로운 철도공무원으로 국가 혼란기에 묵묵히 근무했다. 더 일찍 명예로움을 선언하지 못한 것에 사과드린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국가폭력에 대한 사법부의 진정한 사과에 희생자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풀렸기를 바란다. 검찰의 항고·재항고가 거듭되던 사건에 지난해 3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재심 개시를 결정하고, 그해 말 한대웅 검사가 무죄 선고를 요청한 것도 유족들에겐 위안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유가족 개인의 피눈물 나는 싸움에 맡길 순 없다.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여순사건 관련 특별법들은 20대 국회에 처리되지 않을 경우 자동 폐기되고 만다. 많은 과거사 특별법이 ‘배상·보상 문제’에 걸려 멈춰져 있는데,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우선하면서 구체적인 배상·보상 방안에서 합의점을 찾아갈 수도 있을 터이다. 여순사건은 민간인 희생자를 기릴 공간이나 위령탑 또한 변변히 없다. 이날 재심 청구인이었던 다른 희생자 2명의 유족은 이미 세상을 떠나 ‘무죄 선고’를 받지 못했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더이상 ‘나중에’는 있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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