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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사문화한 ‘징벌적 손배’ 살린 ‘현대중 갑질’ 판결

등록 2020-11-04 18:17수정 2020-11-05 02:38

참여연대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원 등이 지난달 26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 증거개시제 등 ‘소비자 3법’의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여연대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원 등이 지난달 26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 증거개시제 등 ‘소비자 3법’의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울산지방법원은 지난달 28일 중소 제조업체 삼영기계가 납품단가를 부당하게 깎았다며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액 3억500만원보다 많은 5억원을 물어주라고 했다. 그동안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데 매우 소극적이었던 법원이 전향적 판결을 내린 것이다.

삼영기계는 2016년 현대중공업이 하도급 대금을 10% 깎고 부품 하자를 이유로 대금을 주지 않자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8월 현대중공업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번 소송에서 현대중공업은 당시 조선업의 매출 감소와 구조조정 등 경영 환경의 개선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충분한 협의와 정당한 사유 없이 납품대금을 부당 결정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경영상 어려움을 참작해 징벌적 배상액을 1.64배로 정했다. 하도급 거래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최대 3배까지 물릴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2011년 하도급법에 처음 도입된 이래 제조물책임법 등 20개 법률로 확대돼왔다. 현행법으로도 피해액의 3~5배까지 배상을 물릴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법원의 소극적인 태도와 피해 입증의 어려움 등으로 실제 인정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하도급법의 경우만 봐도, 제도 도입 이후 지금까지 징벌적 배상을 인정한 사례는 이번이 겨우 두번째라고 한다. 그동안 법원이 ‘하도급 갑질’에 얼마나 무감각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지난 9월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전면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고의·중과실 등 악의적 위법 행위에 대해 최대 5배까지 배상을 물리고 대기업의 입증 책임도 강화했다. 징벌적 배상은 피해 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고 법 위반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기업을 옥죄려는 게 아니다.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국에선 이미 오래전에 자리잡은 제도다.

그동안 행정·형사 처벌은 미약하고 민사상 배상 책임까지 가벼우니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가 판치는 악순환이 이어져왔다. 여야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고 법원도 대기업 봐주기 판결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공정한 거래 질서를 세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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