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정기국회가 끝나는 9일 오후 국회 중앙홀 앞 계단에서 정기국회 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10일은 고 김용균씨의 2주기다. 깜깜한 밤, 충남 태안의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스물네살 청년이 자신이 점검하던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당한 참극은 지독한 반복이었다. 그래서 더욱 잔혹했다.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열아홉살 김아무개씨, 제주의 생수공장에서 일하던 열여덟살 이민호씨도 홀로 일하다 죽음을 당했다. 셋 다 차갑고 육중한 기계에 끼여 숨졌고, 하청 비정규직이거나 현장실습생의 신분이었다.
부모들의 비통함과 시민사회의 감응이 만나, 동일한 죽음의 반복을 막아야 한다는 의지로 표출됐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을 요구하는 농성이 이어졌다.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발이 부르트도록 국회를 돌며 법 개정을 호소했다. 입법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여당은 야당 탓을 했고, 야당은 개정안에 대해 “이렇게 하다간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고 했다. 마침내 산안법은 ‘김용균법’이라는 별칭과 함께 28년 만에 개정됐다. 유족과 시민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일터에서의 죽음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김용균씨처럼 기계에 끼여 숨지는 노동자가 나흘에 한명꼴로 나오고, 하루 평균 6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숨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 사망 1위는 부동의 순위로 고착돼버렸다. 개정된 산안법이 제구실을 못 하는 것은 산재의 구조적 문제를 비켜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산재 사망이 하청업체에서 나오는데, 원청업체에 재해 예방을 지원하도록 책임을 지우지 않은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재 사망의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원청업체 사업주의 책임을 크게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6월 처음 발의됐고, 국민의힘도 지난 1일 유사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2년 전 산안법 개정을 주도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이번에는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한 의원은 산재 유족에게 “한두명씩 숨지는 사고에 ‘중대재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까지 했다고 한다. 대놓고 하는 반대보다 더 지능적인 반대로 비칠 정도다.
일하다 죽는 것이 자연현상처럼 돼버린 현실을 방치한 채 ‘노동친화적 정부’를 외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기국회 안의 처리는 물 건너갔지만 아직 임시국회가 남아 있다. 정부와 여당은 더 늦기 전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올해 안 처리를 천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