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뉴타운·재건축·재개발 사업구역 1300곳 가운데 사업 시행 인가 이전 단계의 610곳은 실태조사와 토지 등 소유자의 의견 수렴을 거쳐 사업구역 지정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뼈대로 한 ‘뉴타운 출구전략’을 30일 내놨다. 박 시장은 구역 지정을 해제할 경우 승인 취소된 조합이나 추진위원회에 이미 쓴 비용을 일부 보조하기로 하고 정부에 비용 분담을 요구했으나, 구역당 많게는 수백억원 넘게 사용한 조합 비용 보조의 법적 근거가 없고 지원 항목과 규모 등을 놓고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시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열어 이런 내용의 ‘뉴타운·정비사업 신정책구상’을 발표했다. 박 시장은 “뉴타운 사업으로 인해 공동체의 가치가 송두리째 훼손됐다”며 “영세 가옥주·상인·세입자 등 사회적 약자가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전면철거 방식의 뉴타운·정비사업 관행을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는 공동체·마을 만들기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2002년 도입한 뉴타운 정책을 두고 그 ‘출구전략’을 서울시가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임 오세훈 시장은 뉴타운을 추가 지정하지 않았지만, 이미 지정된 사업구역을 두고는 그동안 투입된 비용 때문에 지정 해제가 어렵다는 견해였다.
서울시는 사업 시행 인가를 받지 않은 610곳은 실태조사와 주민 의견 조사를 해, 구역별로 지정을 해제할지, 사업을 계속 추진할지 결정할 방침이다. 이 가운데 조합이나 조합 설립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은 317곳은, 구청장이 의견을 물어 토지 등 소유자의 30% 이상이 동의하면 구역 지정을 해제하기로 했다. 이건기 서울시 주택정책실장은 “추진 주체가 없는 지역은 올해 안에 해제를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해제되는 사업구역은 ‘마을 만들기’ 등 주거재생 사업이나 주거환경관리 사업을 벌여 서울시가 공동이용시설 설치 등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조합이나 추진위원회가 이미 구성된 사업구역 293곳은 소유자 10~25% 이상이 동의하는 경우 구청장이 실태조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뒤 사업 동의자의 절반 이상, 혹은 소유자의 절반~3분의 2 이상이 동의하면 구역 지정 해제를 시장에게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구체적인 절차·방법은 오는 4월 조례로 정할 계획이다. 추진위원회 해산 때 사용 비용의 일부를 서울시가 부담한다.
반면, 주민 갈등이 없고 사업 추진 의견이 많은 사업구역을 두고는, 주택 수요에 맞춰 소형 평형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게 세대수를 늘리는 절차를 간소화하고, 세입자 대책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뉴타운·정비사업을 추진할 경우 세입자들의 주거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재개발로 준공된 임대주택에 재입주할 수 있도록 하고, 기초생활 수급자에겐 모두 조건 없이 임대주택을 공급하기로 했다. 겨울이나 악천후 때 철거작업을 못하도록 했다.
사업 시행 인가 이전의 610곳과 인가를 받았지만 준공 이전 단계인 256곳을 대상으로는, 갈등을 조정할 주거재생지원센터(공공·민간 전문가 50명)를 설립해 뒷받침하겠다고 서울시는 밝혔다.
그러나 이날 박 시장은 “엄격한 공영개발의 원칙과 공공성 확대 같은 것이 포함되는 방향으로 법률의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뉴타운을 둘러싼 깊은 갈등을 해소하기에는 법률 제약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지정 해제 때 승인 취소된 조합이 사용한 비용 지원 문제, 의사결정에 세입자들의 참여권을 보장하는 문제, 상가 세입자의 휴업 보상비를 현실화하는 문제 등이 과제로 꼽힌다.
주거문제 전문 시민단체인 나눔과미래의 이주원 사무국장은 “이번 대책은 현행법 안에서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최대치”라며 “뉴타운 사업의 책임이 있는 이명박 정부를 압박해 관련법 재개정 등을 촉구하는 박 시장의 정치적 액션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기용 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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