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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행정·자치

국정원 ‘정보 먹튀’ 설친다

등록 2005-08-03 08:48수정 2005-08-03 08:52

직원들 기강해이 정보 훔치고 거래
YS정부때 정치인 입김 늘면서 조직이 방패막이 안되자 ‘불법무장’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에는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여럿 있었다. 박선호 의전과장, 박흥주 부장수행비서, 유성옥, 김태원, 이기주씨 등 중정 요원들은 바로 몇시간 전에 떨어진 김재규 부장의 지시에 한마디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채 ‘거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김 부장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들은 공판 과정에서 “부장의 지시에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중정의 조직 기강”을 방어 논리로 내세웠다. 상관이나 조직의 불법 지시에 따르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는 논란은 뒤로하더라도, 당시 정보기관의 내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2005년, 전 국가안전기획부(중정의 후신, 현 국가정보원) 미림팀장 공운영씨는 자술서를 통해 “언젠가는 또다시 도태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선 나머지, 중요 내용은 은밀히 보관하기로 작심한 끝에 일부 내용을 밀반출해 임의 보관했다”고 밝혔다.

정보기관의 요원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에서 취득한 정보를 ‘팔아먹는’ 행태는 외부의 시선으로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공씨의 사례말고도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을 ‘배신’하는 일은 이제 일상사가 돼 버렸다.

2002년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국정원 직원들은 유력 후보 진영에 개인적으로 줄을 댔다. 지금도 국정원 출신 정치인들이나 면직된 전직 직원들의 모임인 ‘국사모’ 쪽으로 유출되는 정보가 상당하다. 국정원 내부에서 정보를 끊임없이 빼돌리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딸 문제를 방송사에 제보한 사람도 전직 국정원 간부라는 주장이 있다. 최근에는 활동비 삭감에 불만을 품은 국정원 직원이 자기 상사의 ‘문제점’을 조사해 외부로 알리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요지경이다.

 국정원 관계자들은 내부 기강의 붕괴가 국정원이라는 조직이 직원 개인을 더는 ‘보호’할 수 없게 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 시기는 대체로 김영삼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도 국정원은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했지만, 내부 정보를 외부로 빼돌리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고 한다. 김영삼 정부에서 정치인들이 국정원 내부에 대한 간섭을 시작하면서, 국정원 간부들이 정권 실세들에게 이리저리 줄을 대는 풍토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김대중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국정원의 호남 인맥 중 일부는 동교동 ‘실세’인 권노갑 고문 등에게 접근했고, 실제로 몇몇 사람은 그런 방식으로 차장이나 경제과장 등 요직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ㅁ고 출신 직원 ㅈ아무개씨는 ‘동교동 사람들’과 식당에서 고스톱을 치며 정보를 유출해 구설에 올랐지만, 이종찬 당시 국정원장은 동교동과 가까운 그를 손댈 수 없었다. 그는 1999년 천용택 원장이 취임한 뒤 면직됐는데, 천 원장은 동교동의 반격을 우려해 그를 면직시킨 직후 김대중 대통령에게 즉시 보고하는 ‘선수’를 쳤다. 원장이 직원 한 사람 면직시키는 것이 그렇게 부담스러웠다는 얘기다. ㅈ씨는 최근 공운영씨의 후견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종찬 원장 시절 공씨 복직 로비를 하면서 공씨에게 다시 ‘일’(도청 업무)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 일도 있다고 한다.

내부 기강과 관련해선 감찰실 직원이었던 ㄱ아무개씨 사건도 유명하다. 97년 대선을 앞두고 ㄱ씨는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 자료를 들고 나와 ‘양심선언’을 시도한 일이 있다. 국정원은 우여곡절 끝에 자료를 회수하고 그를 면직시켰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자, ㄱ씨는 복직을 요구했다. 이종찬 원장은 직원의 복직은 전례가 없고, 어쨌든 정보를 외부로 유출했다는 이유로 복직을 거부했다. 그러나 ㄱ씨는 99년 천용택 원장이 취임한 뒤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로 국정원에 결국 복직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직원들의 기강 해이가 더 심해지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전했다. 성한용 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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