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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적 문제에 지방정부 팔걷어
지역모델이 전체로 확산되기도 지방정부의 조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여러 한계에도 지방자치의 성과가 쌓이고 있고, 그 제도적 표현이 조례인 까닭이다. 순천시·안산시의 에너지 조례는 에너지 위기라는 지구적 문제를 지방정부가 나서 풀어보려는 사례다. 탈원전 문제는 물론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위기, 불평등 같은 전지구적 문제에 접근하는 시도로 이른바 ‘지역 모델’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식량 위기에 대한 대비도 지역의 농업과 도시농업이 활성화되고, 여기서 생산된 건강한 먹거리를 지역 주민이 먹는 ‘지역 먹거리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지역 안에서 건강한 먹거리가 순환하는 체제이다. 지역 차원의 대안 모델이 먼저 나올 때 국가 수준의 변화가 더 용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주민참여예산제도 브라질의 한 지역 도시인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시작돼 전세계로 확산됐고, 우리나라의 지방재정법 개정으로까지 이어졌다. 국가의 정책 결정에 따른 ‘하향식 변화’는 각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전국에 자전거도로를 많이 만들었지만, 지역에 따라 그 효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전 희망제작소 조례연구소 소장)은 “지방정부는 몸집이 가볍고 유연하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다. 사회를 바꾸는 데 위로부터 혁신도 있지만, 좋은 조례는 아래로부터의 혁신인 셈”이라고 말했다. 조례가 시민들의 일상에 끼치는 영향이 가볍지 않다는 점에서 ‘조례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조례가 시민들 일상의 혁신에 밑돌이 되기도 하지만, 뜨거운 정치 쟁점으로 떠오르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친환경 무상급식 지원 조례는 2010~2011년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다. 학생 가정소득 수준을 따지지 않는 전면적 무상급식을 민주당 서울시의원들이 조례로 확정하자,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복지 망국병’이라고 공격하며 주민투표까지 주장하다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여권의 주요 인사가 조례를 두고 시의회와 갈등을 빚다가 정치적 타격을 입은 것이다. 2009년 서울시민 8만여명이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자는 조례 개정 청구안에 서명했고, 이듬해 서울시의회는 조례를 개정했다. 그런데 오 전 시장은 개정 조례의 공포를 거부하고 대법원에 무효확인 소송을 내며 정치적 갈등이 고조됐다. 보궐선거로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1년 12월 대법원 소송을 취하해 2년 동안 끌어온 논란이 마무리됐다. 경남도립 진주의료원 폐업을 밀어붙인 경남도와, 이에 반대한 노동·시민단체 등 사이의 대립에서도 조례 개정이 중대 변수로 떠올랐다. 진주의료원 근거를 삭제한 조례 개정안 처리를 야권 경남도의원들이 저지하려 했으나, 다수인 새누리당 경남도의원들이 몸싸움을 감행한 끝에 ‘날치기’ 처리했다. 국회에서나 봤던 날치기 안건 처리가 지방의회 본회의장에서 연출된 것이다. 정치평론가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유권자들은 국민, 시민, 주민이란 정체성을 갖고서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 임한다. 지방자치 경험이 누적되면서 시장과 구청장, 지방의원들이 바뀌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짐작하기 시작했다. 헌법의 시대와 법률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조례의 시대가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과 법률의 시대를 지나 조례의 시대가 부각되기 시작” 조례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한다는 분석도 있다. 주민 피부에 와닿는 생활의 변화는 지방정부 수준에서 곧잘 영향을 준다. 이를테면 주거 문제에서 중앙정부는 주택 공급물량 조절 등 아파트 숫자를 결정하지만, 지자체는 건물 용적률과 주변과의 조화 같은 ‘아파트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김형식 서울시의원은 “서울시의 주거환경을 국가 수준에서 정리하는 것은 사실상 끝났다. 이제는 시의회 조례로 이를 조절하는 작업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1년도 남지 않은 내년 지방선거에선 두루뭉술한 공약보다는 구체적인 정책을 담은 조례 제·개정을 약속하는 공약이 더욱 주목을 끌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약이 지켜지기 위해선 조례 제정 같은 제도적 시스템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지금은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는 경구가 절실하다. 지역의 정치세력들이 조례를 중심으로 경쟁할 때 지방자치가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사진 강창광 신소영 이정아 기자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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