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아끼는 김 의장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28일 국회에서 ‘열린정책연구원’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연 전문가 초청 정책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가고 있다. 김 의장은 당·청 갈등에 대한 기자들의 물음에 “침묵이 금인데…”라며 입을 다물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노무현 대통령이 탈당과 자신의 임기를 언급한 28일 저녁 6시30분, 여당 지도부인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의원 13명 전원이 굳은 표정으로 국회로 모였다. 박병석 의원이 “이제는 모든 문제를 결정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더 논의의 성역은 없다”고 말했다.
정장선 의원은 “노 대통령은 탈당하고 남은 국정과제에만 몰두해야 할 때”라고 했다. 예사롭지 않을 회의 분위기를 예고하는 말들이었다.
2시간 동안 계속된 비대위 회의에서는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다. 대통령의 즉각적인 탈당을 요구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결론은 간명했다. ‘지금은 민생안정과 정기국회의 성공적 마무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때다. 대통령도 정치는 당에 맡기고 국정에 전념해 달라. 무엇보다 대통령은 힘든 때일 수록 책임있는 자세로 국정에 임해야 한다.’
그 메시지의 무게는 무겁다.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는 탈당 문제를 논의하지 말자는 얘기지만, 뒤집어 보면 정기국회 이후엔 탈당할테면 하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임기 관련 발언 등 무책임한 발언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도 담겨 있다.
비대위의 이런 분위기는 대다수 의원들의 뜻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김영춘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 문제에서 당의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는데, 더이상 끌려갈 수는 없다. (당과 청와대가 갈라서야 하는) 결정적 분기점에 도달한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탈당할테면 해보라’는 식의 격앙된 발언들도 쏟아졌다. 이제는 노 대통령 특유의 ‘벼랑끝 정치’에 끌려갈 수는 없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목희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 하려는 정치방식은 여당도 야당도 다 제치고 직접 국민들을 상대하겠다는 것인데, 그래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전병헌 의원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국민을 안심시키는 말씀이 아니다. 부적절하다”라고 비판했다.
여당의 이런 분위기엔 대통령의 탈당이 오히려 정계개편을 가속화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셈법도 깔려 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지기 전인 이날 오전 김한길 원내대표는 고위정책회의에서 이미 “이제야말로 당정 분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는 당에 맡기고, 대통령께서는 안보와 경제문제에 집중하라”고 요구했다. ‘정치에서 손을 떼라’는 식으로 표현이 됐지만, 사실상 당을 떠나달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당내 ‘친노 직계’들은 이날 모임을 열어 지도부를 격렬히 비난했다. 비대위 해체와 새 지도부 구성도 촉구했다. 이화영 의원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한 수사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백원우 의원은 “낮은 지지율로 고심하는 여당조차 모든 책임을 정부와 대통령에게 떠넘기고 대통령을 구석에 몰아세우고 있다”고 당 지도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앞으로 노 대통령의 거취 및 정계개편의 방향을 놓고 통합신당파와 ‘친노 직계’의 싸움이 훨씬 격화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태희 이지은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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